포기하는 용기
포기하는 용기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03.2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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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사람들은 말한다.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세상이 너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그래서 진인사대천명이라 하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로 성실한 사람들을 위로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노력만 하면 다된다고 여겨야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세상이 근면과 성실만으로 살 수 있을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처럼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됐다.

가진 자, 힘 있는 자는 노력 없이도 잘산다. 반면 없는 자, 약한 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부가 외치는 공정한 사회, 공평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서민에게는 공염불처럼 들리는 이유다.

개천에서 용 나기도 어렵고 힘 있는 부모 찬스도 없는 이들에게 균등한 기회는 없다. 그래서 포기하며 산다.

학교 교실에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학생)가 넘쳐 난다. 돈 많으면 수포자도 영포자도 구할 수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개한 2020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보면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0만4000원인 반면 200만원 미만 가구의 1인당 사교육비는 9만9000원으로 5.1배 차이가 났다. 사교육 참여율은 월평균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가 80.1%인 반면 200만원 미만 가구는 39.9%에 그쳤다. 사교육참여시간(주당 평균)은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은 2.5시간인 데 비해 800만원 이상 가구는 7.7시간으로 3배 많았다.

불안한 미래를 사는 청년들은 포기할 게 더 많다.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5포세대(3포+내 집 마련, 경력), 7포세대(5포+취미, 인간관계), 9포세대(7포+건강, 외모)를 지나 요즘 20~30대는 마지막 남은 삶마저 포기해야 하는 10포 세대를 살고 있다. 포기할 게 많은 청년들은 자신을 완포세대(완전 포기), 전포세대(전부 포기)라고 부른다.

포기한 삶을 부여잡고 싶은 청년들은 주린이(주식과 어린이를 합친 말로 주식투자 초보자를 의미)로 살아간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대학생 1210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주식투자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9.2%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에는 66.9%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지 6개월 미만인 이른바 `주린이'로 분류됐다. 이들 중 44.8%는 주식투자를 시작하게 된 이유로 재산을 늘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대학생 주린이의 주식 투자 금액은 평균 218만원이었다.

직장인들은 승포자(승진 포기자), 임포자(임원 포기자)로 살며 정년을 꿈꾼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20대부터 50대까지 직장인 739명을 대상으로 예상정년을 주제로 조사한 결과 직장에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 1위는 52%가 정년보장을 꼽았다. 2위는 창업준비(25%)였고 승진을 택한 비율은 19.4%에 그쳤다. 화려한 승진보다는 가늘고 긴 직장 수명을 희망했다.

국회의원 12명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기보다 부모의 부를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촉매제가 돼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며 지난달 `교육 불평등 해소'법안을 발의했다. 취지는 교육 불평등을 없애 개인의 노력이 존중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투지보다 투기로 부를 축적하기 좋은 세상인데 정부는 오늘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외친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지 오래인데 허울 좋은 구호를 포기할 용기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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