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봄
지금은 봄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3.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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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마당의 진달래가 입을 벙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고향의 봄은 진달래가 온 산을 분홍으로 곱게 물들이면서 시작되었다. 그때가 되면 아이들은 친구들과 수다도 늘어가고 밖에서 뛰어다니는 시간도 하루가 모자랐다.

지금이야 아파트가 더 많아 이런 자연의 정취를 모르는 아이들이 많겠지만 7, 80년대는 많은 아이들이 자연과 친숙한 생활을 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진달래 피는 봄이 오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고향집이 그리워지곤 한다.

고향이 지척인 나도 봄이면 이렇듯 그리운데 고향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얼마 전부터 사할린 동포를 대상으로 한 문화 소통 수업을 시작했다. 한국사를 수업하고 있지만 사할린 동포에 대한 지식은 없어 며칠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일제에 의해 사할린 섬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은 그곳의 탄광이나 군수공장에서 혹사를 당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조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광복 이후의 대한민국은 이들을 송환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이들은 일본과 소련과 대한민국의 무관심 속에 무국적자로 힘든 생활을 살아야 했다.

지금 한국에 와 계신 동포들은 광복 이전에 사할린에서 태어난 분들이다. 그래도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들은 무국적자들로 살다 10년 전쯤에야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그리던 곳임에도 수심의 그늘이 있어 여쭙게 되었다. 그분들에게는 사할린에 자녀들이 있었다. 사할린 동포의 영주 귀국 정책에는 자녀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고향을 오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올해 직계비속 1명도 영주 귀국이 가능해 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영주 귀국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누구를 택하느냐는 것이었다.

살아 있으면서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물론 요즘은 정보통신이 발달한 시대이니 전화나 인터넷으로 서로의 안부를 알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그리움은 고통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에 와 계신 분들의 나이가 모두 고령이기에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가족을 보지 못하는 고통 말고도 사할린 동포 어르신을 힘겹게 하는 것이 또 있다. 주위의 시선이 그것이다. 아무리 부모님이 조선인이라 하더라도 사할린에서 태어나셨으니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이 불편할 것이다. 병원 가는 것도, 차를 타는 것도, 시장을 보는 것 등 모두가 그렇다. 수업 중에 사할린 어르신이 질문하셨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 반가워 인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인사는커녕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내가 그분들에게 하는 수업은 한국어보다는 한국 문화를 이해시키는 수업이다. 각 나라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 나라 사람들의 특성은 비슷한 면이 있다. 아무래도 러시아는 호방하며 개방적인 반면 한국은 정을 중요시하면서도 조심성이 많은 듯하다. 코로나를 대처하는 모습이 그것을 반증한다. 10년을 살았음에도 아직도 우리 사회와 융화되지 못하는 그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어렵지만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 열심히 공부하시는 그분들에게 나의 작은 노력이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봄, 이 시간이 그분들에게도 아름다운 꽃길을 걷는 시간이 되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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