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를 심으며
능소화를 심으며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1.03.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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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학교는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는 배움터이다. 안전한 배움터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자신의 꿈과 끼를 살려서 공부해서 남 주는 사람,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학교의 사명이다. 그런데 등하교 시 교통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어떨까? 몇 해 전 등교시간에 안타까운 사고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어려움을 당한 사건을 잊을 수 없다.

우리 학교도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지 않고 개교 이래 그렇게 위험천만한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지내왔다. 필자가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등굣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육청에 보차도 분리 사업을 문의했지만 유치원과 초등학교부터 이 사업을 지원하므로 추후에 검토하겠다는 답변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안전 등하교는 어떤 사안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학교운영위원회의에 의견을 올렸다. 나의 의견에 동감한 학교운영위원장이 자신이 사비로 이 일을 감당해도 되는지 물었다. 수천만 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공사에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으나 당신이 꼭 만들어서 학교에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후 공사는 순식간에 진행되어 학교 울타리 쪽으로 안전하게 등하굣길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하교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이 길의 이름을 짓고 싶었다. 학생자치회에 길이름을 공모해 `봉리단길'로 정했다. 봉리단길을 더 예쁘게 만들고 싶어 길 주변에 대나무도 심고, 황매화도 심고, 능소화도 심었다. 대나무는 봉황새가 대나무 잎을 먹는다고 해서, 황매화는 숭고하고 높은 기풍이라는 꽃말 때문에 심었다.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능소화를 백과사전에 찾아보면 금등화(藤花)라고도 부르는데, 조선시대에는 양반꽃이라고 해서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꽃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해진다.

중국에 소화라는 아름다운 궁녀가 살고 있었다. 황제가 그녀에게 반해서 `은총'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기 질투로 황제는 더 이상 소화를 찾지 않게 되었다. 소화는 결국 궁중에 가장 외진 곳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언젠가는 황제가 다시 자기를 찾아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황제를 그리워하다가 병이 들어 죽었다. 소화는 죽으면서 담장 가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것은 죽어서도 담장 위에서 황제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는 그녀의 작은 소망이었다. 소화가 죽은 자리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예쁜 꽃이 피었다. 그 연주황빛의 고운 꽃은 담을 올라가 황제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꽃에 반한 황제는 그 꽃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능소화는 중국의 궁궐에서 주로 키우던 꽃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양반이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는 꽃이 된 셈이다. 특히 장원급제하여 고향으로 돌아올 때 임금님이 머리에 꽂아주던 꽃이 바로 능소화였다. 어사화라는 별명이 있는 능소화는 질 때 다른 꽃과는 다르게 꽃이 분해되지 않고 통째로 떨어지는데, 그것이 선비의 절개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반들은 자신들만 키울 수 있게 사람들에게 이 꽃을 키우면 눈이 먼다는 잘못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마치 능소화의 꽃가루가 날려서 눈에 들어가면 실명한다는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능소화는 오히려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이다. 줄기, 뿌리, 잎 모두 약재로 쓰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는 능소화는 부인병에 널리 쓰이는 약재로 소개하고 있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영광'의 꽃말처럼 코로나19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히스토리메이커로 성장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봉리단길 입구에 능소화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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