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사랑노래
부자의 사랑노래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2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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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 칼럼
선친께서는 나 어릴 적에 "남자는 웃음이 헤프면 못쓴다"고 말씀하셨지만, 오늘은 웃음이 흔한 세상이다. 시대의 변화를 예감하지 못한 말씀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웃을 준비하고 만난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웃을 준비를 하지 않아도 제법 웃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1000억원대의 재산가가 데릴사위를 공개 모집한다는 뉴스다. 웬만한 개그보다 훨씬 윗질이다. 그러면 이 시는 어떤가.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모두

혹시 헤프게 웃음을 흘리지 말라던 선친의 말씀처럼 철 지난 이야기로 들리는가 가난하기에 평범한 삶마저 포기하고 살아가야 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 집 뒤에 감나무가 있는 농촌 출신의 시적 화자는 포부를 품고 고향을 떠나 도시의 노동자로 지내지만 생활에 쫓겨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 등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러나 화자는 또한 외로움을 알고, 두려움도 있으며, 그리움을 버리지 않았고, 사랑도 안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간에 믿음과 진실이 감추어져 있으며, 자포자기 하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비극적인 현실이 가난한 사랑 노래로까지 승화된다.

그런데 1000억원의 재산가가 데릴사위를 공개 모집했고, 270여명의 후보가 응했다는 보도에 기가 막히는 까닭은 그런 돈이 없어서 저들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일까 왠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차가운 묘비(墓碑)만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차라리 부자라고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부자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겠는가. 부자라고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부자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부자는 모르는 것 같다. 부자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라고 고쳐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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