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닥이와 니체
신바닥이와 니체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3.2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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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인간은 짧게 그리고 험난하게 살더라도 자신의 힘과 생명력이 고양되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니체는 말한 바 있다. 니체의 생을 이해하면 왜 그가 이런 생각들로 살았는지 알 것이다. 요즘, 구비문학에 관심이 많다.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의 전형 같고 이것은 내 모습과도 닮았다. 그런 민담 집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림책 `너울너울 신바닥이'가 있다. 우리나라 판 신데렐라 남성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보다 훨씬 흥미로운데 한번 들어 보실 텐가.

어느 집에 귀한 삼대독자가 태어났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아기가 `팔자가 사납다'는 말에 스님을 딸려 보낸다. (종교인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런데 스님이야말로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지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영험함이 있었는지 신바닥이는 여러 위험을 피해 다니며 스님과 동행한다. 숱한 경험과 위험을 넘어 다니던 어느 날 이제 제 갈 길로 가라는 스님과 헤어져 딸 셋 있는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어찌나 열심히 머슴을 사는지 신바닥처럼 더러워져도 일만해서 이름이 신바닥이가 된다. 그런데 막내딸은 신바닥이에게 잘 해주었다. 주인공을 알아 본 것일까. 결국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보잘 것 없는 생을 알아봐 주는 이 한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 다음은 콩쥐팥쥐나 신데렐라 이야기를 닮았다. 위기의 순간마다 신바닥이는 특유의 성실함과 스님과 지낸 어려운 시절을 겪어서인지 잘 참고 극복한다. `너울너울 신바닥이'이야기는 운명 극복담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은 거지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머슴으로 고생하기도 하지만 그러는 동안 신바닥이의 내면에는 신선과 같은 기품과 능력이 쌓였다. 죽음의 그림자와 맞서 살아낸 과정이 신바닥이를 성장 시켰다. 신바닥이는 신데렐라를 닮았다. 재를 뒤집어쓰고 불을 때는 것도 그렇고 옷을 갈아입고 잔치에 가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겉보기엔 허름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였다. 신바닥이가 막내딸과 함께 너울너울 하늘을 나는 모습은 가장 신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비약적인 순간이 없어도 이미 신바닥이는 생성 소멸하는 세계에서 대지에 충실하고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며 산 인물이다.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두려움과 걱정과 시기, 원한 같은 부정적인 정신을 니체는 `중력의 정신'이라고 명명했다. 요즘 나는 경제적인 압박감과 해야 할 일에 치여 가끔은 없어지고 싶은, 그만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바라는 것은 단순히 안락하게 오래도록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싸우며 스스로 극복해서 나의 힘을 증대 시키는 것이다. 신바닥이는 삶의 의미를 물으며 쓸데없는 진지함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그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 제기 될 필요가 없을 만큼 삶을 유희처럼 살아갔다고 생각한다.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인 삶이 아닐까.

성장을 두려워하는 자가 신념을 만든다고 니체는 말했다. 신바닥이에게 신념이 있었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삶의 태도 일 것이다. 그의 주체적인 자유로움이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고 자신을 이념의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았다. 1994년 강원도 홍천에 에 사시는 오월선 할머니의 `너울너울 신바닥이'이야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슴을 울리는 유명한 철학자보다 잘 살아낸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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