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점
작은 점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3.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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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어느 날 내 볼에 생긴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 이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점이 도드라져 보여 피부과를 가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왜 이리 거슬릴까. 이것에 대한 나의 해석은 마지막 문단에서 소개하겠다.

검은 반점(정미진 글/황미옥 그림)이라는 제목은 꼭 내 마음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겉표지부터 시선을 끄는 책의 그림은 섬세한 연필의 터치로 그려졌다. 마지막 몇 쪽을 제하고 모두 흑백으로 되어 있고 풍경보다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져 주인공에 집중하게 된다. 작가의 예술적 감각이 돋보여 그림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검은 반점의 스토리는 이러하다. 어느 날 소녀는 거울을 보다가 검은 반점을 발견한다. 반점을 발견한 순간부터 언제 생겨난 것인지, 왜 생겨난 것인지, 사람들이 그 반점을 바라보는 것 같고 자신도 그 반점에 집중하게 되면서 모든 생각이 반점과 연결되어진다. 그러다가 엄마에게도 반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자신과는 다르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해결되지 않은 불편함은 자신과 같은 검은 반점을 가진 소년을 만나면서 해결되는 것 같았다. 소년의 반점이 자신의 것과 닮아 좋았는데 그 닮은 모습이 싫어진다. 내 반점이 싫은 건지, 네 반점이 싫은 건지…. 모두 검은 반점 때문이라고 소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소녀는 사람들마다 각각의 다른 색과 크기의 반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어쩌면 세상이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는 건 이 다양한 반점들이 빛나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녀의 생각이 어디까지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반점도 이 세상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에 미쳤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우리는 언제 편안함을 느낄까. 마음에 갈등이 없이 편안할 때일 것이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깨뜨리는 사건들을 만날 때이다. 그때 우리는 불안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정신분석적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소녀가 검은 반점을 발견한 순간은 마음의 평안이 깨지고 불안을 갖게 되는 시점이다. 검은 반점은 상징화된 것으로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열등감일 수도 있고 수치스러워 꽁꽁 숨겨놓은 비밀일 수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검은 반점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녀는 처음 반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자신에게만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소녀의 불안은 엄마도 검은 반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받지만 공감 받지 못해 해소되지 않는다. 자신과 닮은 반점을 가진 소년을 만나 공감하고 동일시하며 그 갈등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소년이 가진 반점을 싫어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반점을 상대에게 투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의 갈등은 타인을 통해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상대에게 투사했던 자신에 대해 더 깊게 좌절한다. 그래서 소녀는 검은 반점이 더 싫어진다.

소녀가 사람들에게 각자의 반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인정하게 되며 탐색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통찰이다. 자신의 반점에만 몰입되어 있을 때와는 다른 성숙한 모습이다. 검은 반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발견 이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또한 같은 반점을 가진 이의 뒤에 숨어 안전하고자 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내 얼굴의 점에 대한 나의 통찰은 이러하다. 엄마를 닮고 싶지 않은 내가 얼굴의 점을 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도 얼굴에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엄마를 닮은 것이라 할 수는 없는데 나는 점을 볼 때마다 엄마를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점을 없애고 싶어 하는 것이다. 통찰은 발전하기에 시간이 흐른 후 나의 해석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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