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세발 6
조주세발 6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1.03.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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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옹졸한 내게
알맞은 오막살이
턱 고이고 앉아 저녁을 기다리다가
대낮에 우는 두견새 소리에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네.


반갑습니다. 무문관(無門關)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은 이제 봄의 기운이 완연해져 개천의 실버들도 연초록의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 7입니다.

모든 사람은 날마다 그저 똑같은 세계를 살아간다고 여기지만 각 개개인은 각자의 마음이 창조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와 누군가는 사랑 그 자체가 하나로 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점차 식으면 서로를 다른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랑이 끝나면 두 사람은 타인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이 미움이 되어 심한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두 사람은 적이나 원수가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같은 사람인데 어떨 때는 아름다운 사랑이 되고 어떨 때는 적이나 원수가 되어 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사람이나 사물을 보지 못하고 각자의 마음이라는 필름으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깨우친 사람들의 공통된 관점인데요. 신비할 정도로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조주 선사의 눈으로 보면 나라고 하는 것은 도구에 불과한 몸도 아니고 이 몸을 나라고 인식하는 마음도 아니지요. 조주선사에게 나는 순수한 의식 자체이면서 생명이고 사랑이라는 통찰이며 깨우침(自覺) 그 자체란 말이지요. 이 또한 그 이름이 순수의식이니 깨우침이라는 말입니다.

부처란 내가 인식하는 모든 것에 대해 순수한 의식이니 모든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이면서, 그리고 모든 것을 창조하는 것으로서 바라보는 세계로 깨우침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라 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자동차가 주인인지 운전자가 주인인지 누가 주인인지를 성찰할 수 있다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제7칙 조주세발 7을 살펴보도록 하고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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