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충돌
선과 악의 충돌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1.03.1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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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신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악의 무리를 뿌리 뽑지 않으시는 것일까?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에 선과 악의 비유가 나온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서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라.”

점점 비리 공화국이 되어가는 대한민국에서 불의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 살아가기란 참 어렵다. 어떤 철학적 신념 없이는 소신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융통성 없다는 평가를 받는 시대지만 적어도 인류 보편의 선의지를 바로미터 삼아 철저한 자기검열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선이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니체철학을 대표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 철학의 총론으로 기존의 가치관을 의심하고 기득권층 중심으로 설정한 선과 악의 개념을 해체하여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자는 니체 사상의 핵심을 다뤘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은 말종 인간과 초인 사이의 인간 군상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초인을 향해가는 건강한 정신과 힘을 지닌 진아 찾기의 과정이다.

니체가 화두로 던져 파문을 일으킨 `신'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고대로부터 출발한 채권, 종족, 신, 국가의 개념과 조응해서 해독할 철학적인 부분이 크다. 성직자들은 신을 죽게 한 자들이며 자칭 도덕의 계보학을 형성하여 인간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내장하게 만든 살해자들이라고 고발한다. 그러나 그 철학은 선의 대척점에 악이 공존함을 피력한다. 겨울로부터 봄이 태동하듯 선과악의 충돌, 즉 악을 딛고 선이 성장한다는 역설도 있다. 선이 더욱 선일 수 있도록 필요악이란 말의 의미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자기보존과 자기 극복의 삶이라는 두 축에서 자기 밖의 가치에 순응하는 노예 생활을 종식하고 자기 가치의 주인으로 살라는 전언이다.

니체의 화두처럼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살면서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늘 악을 피하고 선을 지향하는 것, 내게도 유익한 일이 타자와 공동체에도 유익한 일인지 살필 일이다. 인류 보편의 선의지조차 거슬러 자기 욕망의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 시장의 가치를 좇아 악의 레일에 편승하는 부류가 훗날 가라지로 분류될 악일 것이다. 늘 자기 극복의 삶을 지향하며 새롭게 창조하고 자율적이며 베푸는 삶, 능동적인 삶, 생명 넘치는 건강한 정신으로서의 삶이 알곡의 삶이요. 힘에의 의지이다.

미덕으로 매스컴을 도배하는 예술 같은 일은 언제나 도래할까. 저 멀리 겨울 산모롱이를 돌아 맑은 햇살이 달려온다. 순수 자체로서의 봄 햇살이다. 선(善)이라면 저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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