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독립
마음의 독립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1.03.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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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해마다 3월이 되면 누구나 유관순 독립운동가를 생각한다.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은 원불교 교무를 보고 유관순 누나라고 부르는 동네 꼬마 녀석들을 예전에는 심심찮게 보았다. 유관순 열사, 유관순 독립운동가는 3월의 상징이며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훌륭한 분이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유관순 독립운동가의 일생과 업적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은 무엇인가에 종속되어 있거나 의지하고 있는 것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선다는 뜻이다.

독립은 어려운 일이다. 20대 청년들이 의지해왔던 가정에서 독립을 선언하는 일이 잦다. 하지만 정말로 독립을 한 것인지는 석연치 않다. 돈이나 생필품이 떨어지면 다시 본가로 찾아오거나 다른 의지할 곳을 찾기 때문이다. 그건 진정한 독립이 아니다.

누군가는 굳이 독립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독립은 해야 한다. 독립을 하지 못하면 결국 간섭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인 자유의지를 방해하는 심각한 요소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의 가치는 독립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독립운동 중이다. 수많은 열강 국가들의 제재와 간섭, 그리고 사대주의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사투 중인 것이다. 물론 완벽한 독립은 어렵다. 형상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형상이 있는 존재는 완벽하게 홀로 독립할 수 없다. 존재는 다른 것들과의 관계가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과 함께 있되 완벽하게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이다. 진리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것들과 함께 있지만 또한 완벽하게 홀로 존재한다. 존재라는 말도 억지로 쓰는 것일 뿐이다. 진리는 그 자체로 완전하고 어떠한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다. 언어가 끊어진 자리이기에 언어로 말하는 순간 틀린 것이 되어 버린다. 너무 거창하게 말하니 진리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욕망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진리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은 생각도 아니고 뇌의 작용인 사고도 아니다. 그렇다고 화가 나고 슬픈 우리의 감정 상태도 아니다. 마음은 생각과 사고와 감정의 뿌리이자 주체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모든 것들은 마음 하나에서 시작되고 만들어진 것이다. 인류에게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이 욕구가 되고 욕망이 되어 지금 물질세계의 발달을 이룬 것이다. 그러니 마음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들의 마음은 주로 물질에 종속되어 있거나 감정에 종속되어 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자 돈에 종속되어 있고, 격해진 감정에 종속되어 제 마음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살인을 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생각과 사고와 감정의 주체인 마음이 역설적이게도 생각과 사고와 감정에 종속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진리이다. 물론 온전한 마음이 진리이다. 생각과 사고와 감정의 주체로서 모든 것들과 함께 있되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빛나는 완전한 존재와 비존재로서의 마음 말이다. 이 마음은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어도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그 마음을 지키고 쓰는 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이 독립되어야 한다. 생각과 사고와 감정에서 완벽하게 독립되어야 한다. 독립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원래 마음 그대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대종사가 틈틈이 공부하고 연마하라고 알려준 의두요목 중 하나를 소개한다.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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