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궁리하다
놀이를 궁리하다
  • 박윤미 충주 노은중 교사
  • 승인 2021.03.10 19: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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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윤미 충주 노은중 교사
박윤미 충주 노은중 교사

 

3월 첫 주가 지나 드디어 금요일 종례 시간이 되었는데 두 자리가 비어있다. 계단 청소를 하는 준이가 2층까지만 하면 되는데 그 위까지 하느라 늦는 거라고, 그래서 열이가 도와주고 있다며 아이들이 새처럼 재잘댄다. 잠시 후 두 친구가 뛰어 들어오자 모험을 끝내고 온 영웅을 맞이하듯 모두 한마디씩 칭찬하며 와글와글 따뜻한 큰 파도가 지나간다.
3월이 한 해의 시작인 듯 산 것이 딱 25년째, 올해는 더욱 특별한 3월을 맞았다. 새 학교에서 그야말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처음인데, 더욱이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입학 첫날 이 학교에 신입인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함께 학교 탐방을 했다. 2층에 있는 세 개의 교실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즐겁게 머문 곳은 1층의 동편 현관이었는데, 1971년 1회 선배들부터 지금까지 졸업한 선배들의 단체 사진이 연도순으로 게시되어 있었다. 교복을 갖추어 입고 열 맞추어 찍은 흑백 사진에는 남학생반, 여학생반으로 나뉘어 100여 명이 족히 넘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가족사진 같은 상황이 되었다. 우리 반이 끝까지 함께 하여 3년 후에는 7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 그 아래 게시되도록 하자고 서로 약속하며 다음으로 향했다.
급식실과 미술실, 과학실을 지나자 중앙현관의 벽에는 선배들의 다양한 작품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그중 각자의 꿈을 새겨넣은 선배들의 진로 카드가 가장 인기다. 하나하나 읽어보며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낯설지 않은 이름인 듯하다. 앞으로 우리도 이렇게 만들 거라고 했더니 다시 한번 유심히 들여다본다. 시간표에 따라 어떤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며 진로실과 정보실, 체육관까지 1층의 특별실을 다 돌아보고 도서관을 지나 2층의 교실에 되돌아오기까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는 반짝이는 눈에는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하다.
강산이 네 번 바뀐 시간을 거슬러 내 어렸을 때 뛰어놀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살아난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마을 아이들 모두 모여서 함께 가야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는 수많은 이야기, 놀이, 탐험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많은 것이 다르지만, 그나마 내 공상과 꿈이 뿌리내린 터와 조금 비슷한 곳에 드디어 오게 되었다. 막연하게 한 번쯤은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의 교사를 상상해보기도 했었는데, 꿈 하나가 이루어진 듯 하다.
한 제자는 내게 ‘이상을 꿈꾸는 사람, 그리고 그 이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이루어 내는 사람’이라는 평을 해주었다. 자기가 본 사람 중 가장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로 시작한 평가였는데, 가능성과 한계가 함께 들어 있는 이 말은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인상적인 표현이어서 이후 이 말에 비추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까지도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고 끊임없이 ‘놀 생각’을 하는 나의 습관은 내 어린 시절의 놀이 문화에서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새 학교의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아직 정신없는데 아이들은 신입생 기간 4일 만에 벌써 완벽하게 적응했다며 큰소리로 답한다. 일곱 명의 목소리 크기가 비슷한 것이 무엇보다 좋다. 지금처럼 밝고 씩씩하게, 함께 돕고 서로 감사하며 즐겁게 놀아보자. ‘이상’은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운 곳에 펼쳐있는 것이 더 많다. 이 어린 어른은 이 반짝이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가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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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 2021-04-09 19:23:17
재밌게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