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놓자
마음 놓자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3.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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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한 젊은 구도자가 있었다. 그는 많은 책을 읽었고, 지혜롭다는 인격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수한 서적도, 훌륭하다는 인사들도 그가 목마르게 갈망하는 깨달음을 채워주지는 못하였다.

도량이 넓고 큰 그였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날로 야위어가던 그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위 끝 낡은 암자에 아홉 해 동안을 줄곧 벽만 바로 보고 앉아 있는 노승이 있다는 것이다. 노승은 깊은 산 속 암자에 들어온 뒤 십 년이 가까워지도록 바깥출입이란 전혀 없고, 칡뿌리와 솔잎 말려놓은 것을 보았다는 나무꾼은 있다지만 무얼 먹고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젊은 구도자는 불타는 구도의 일념으로 죽기를 무릅쓰고 그 험한 눈길을 헤치며 노승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다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에 도착하여 만나기를 청하였지만, 문밖의 투박한 짚신 한 켤레를 보았을 뿐 노승을 만날 수는 없었다. 사내는 어쩔 수 없이 문밖에 선 채, 기다리리라 마음먹었다. 찬 눈을 맞으며 밤을 새고 허벅다리까지 눈이 쌓여 묻힌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방문이 열리고 노승을 만났다.



스님, 제게 부처님의 법인을 들려주십시오.

부처님의 법인은 사람한테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노승의 목소리는 차갑도록 엄숙했다. 진리는 누구한테서 얻어들어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고 젊은이는 머리를 숙인 채 괴로움에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노승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스님, 지금 제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제발 저를 안심시켜 주십시오.

그래? 어디 그럼 그 불안한 마음을 내게로 가지고 오너라. 그러면 너를 안심시켜 주마.

젊은 구도자는 자기 마음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가져올 수 있었을까? 예상하다시피 그는 온갖 데를 헤매며 찾아보았지만 불안한 자기 마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는 젊은이에게 노승은 “내가 너를 위하여 이제야 마음을 놓겠구나. 그렇다. 너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안한 마음은 실체가 없는 너의 망상이다. 본래 불안한 마음은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나그네와 같다. 부질없이 망상을 일으키지 말라. 그러면 네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라며 결결한 음성으로 당부했다.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개강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다. 늘 하던 강의도 잘할 수 있는지 걱정이고, 새로 입학한 학부 학생이며 대학원생과도 함께 무리 없이 공부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이 마음이 어찌 교수만의 마음일까? 이제 막 대학을 입학한 학생도, 대학원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대학원생도, 첫 발령이나 전입으로 새로운 임지에 발을 디딘 선생님도 다 마찬가지의 마음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 마음 어디를 뒤져도 불안한 마음만 꺼내어 진정시킬 수 없으니, 노승의 지혜를 빌어 사라지는 나그네 같은 불안을 떠나가도록 마음을 놓는 수밖에.

절기는 경칩을 지나 춘분을 향해 가고 있다. 두꺼운 외투를 벗고 얇은 겉옷을 걸치는 느낌이 산뜻했다. 봄맞이를 할 겸 창가 화분에 튤립, 러넌큘러스 같은 봄꽃도 심었다. 혹 새벽 추위에 튤립이 얼까 걱정했는데, 웬걸 정말 봄이 성큼 와있나 보다. 괜한 걱정은 넣어두라는 듯 튤립은 어느새 그 우아한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시절에 맞추어 꽃봉오리가 맺히듯, 잘할 거야. 마음 놓자.



*구도자 이야기는 중국 선조의 제2조인 혜가가 초조인 달마를 찾아가 설중단비로서 구도한 이야기로 법정스님의 책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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