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멈춰야 산다
멈춰라, 멈춰야 산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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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정체'는 60년 전인 1962년 7월 창립된 대한주택공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후 토지금고를 전신으로 1975년 설립된 한국토지공사와 2009년 합치면서 지금의 LH가 되었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는 1941년 일제치하에서 설립된 `조선주택영단'을 모체로 하고 있다.

내가 `정체'라는 다소 거북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LH에 대해 거론하는 까닭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이다. 그러니 각설하고, LH의 기원을 들먹이는 이유는 온갖 부조리와 불법, 탈법을 비롯한 반칙과 모순, 불공정의 시작은 역사적 불온성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조선주택영단'은 심각한 주택난을 타개하고 주거에 관한 국민생활의 향상, 발전을 기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과연 조선 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인에게 그렇게 선량한 의도를 가졌겠는가. 더군다나 1941년 그 해 일본은 중일전쟁을 계속하는 와중에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켰으니, 방공(防空)을 위한 주택소개의 일환으로 택한 강제적 주택 정책임이 확실하다.

대한주택공사는 1962년 설립되던 해에 서울 마포아파트를 세우면서 대한민국에 아파트시대라는 판도라 상자의 문을 젖혔다. 1970년대에 이르러 대한주택공사가 실질적으로 주도한 본격 강남개발의 시대를 열면서 대한민국의 국토는 사실상 온통 부동산의 덫에 빠지게 되었고, 이런 모순의 역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못하고, 또 고쳐지지 못하고 계속되고 있다.

2015년 개봉된 영화 <강남 1970>은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고아원 출신의 두 청년의 욕망과 파멸, 그 과정에 얽히고설킨 정치인과 공무원, 투기꾼과 폭력배의 협잡과 암투를 그리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감독 유하는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이라고 토로한다.

시인이며 감독인 유하가 동명의 시집<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문학과 지성사)>를 출간한 해는 1991년. 20세기는 홀연히 지나고 미래의 세계인양 21세기의 청년시절을 한창 보내고 있지만 강남은, 그리고 부동산은, 불평등과 불공정의 극단의 수단인 집값의 시세차익을 통한 불로소득의 파렴치한 세상은 조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전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아파트가 돈이 아니고 집이 되는 세상'은 세상이 온전하게 바뀌는 신호로 작동해야 하는데, 이미 이를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이 땅엔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역시 공허하기 그지없으니 국민은 불안할 따름이다.

토지+자유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한국의 부동산 불평등 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인구 중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개인은 33.4%. 이 가운데 상위 10%가 토지 가액의 79.1%, 면적은 무려 96.5%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위 10%가 대한민국의 토지 대부분을 갖고 있는 셈인데, 2010년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이들 그룹이 가져가는 소득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만큼 우리는 극심한 불평등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불평등은 결국 `내집 마련'이라는 소박한 꿈으로 포장된 시세차익의 부동산 불패신화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현상을 낳은 임대료 불로소득의 탐욕에서 시작된다.

LH 투기꾼들에 대한 원성과 분노가 높아지자 조사와 수사, 발본색원, 환수 또는 강력한 처벌 등등 온갖 사후약방문이 난무하고 있다.

문제는 처음에 있다. 서울, 부산은 제외한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어 있으나 무주택자가 40%나 된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다. 누구는 하나도 없는데 다른 누구는 많이 갖고 있다는 불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처음 시작할 일이다. 개발과 공급 중심의 토건공화국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촛불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

한 갑자가 넘는 LH 존속 기간 동안 고수해 온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을 멈춰야 한다. 신도시를 멈춰라. 멈춰야 다 같이 살 수 있다.

도둑질이 가장 돈을 잘 버는 수단이 되는 나라라면 도둑은 더 많아지고, 수법 또한 갈수록 악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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