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무
젊은 나무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3.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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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사람의 모습 중에 제일로 보기 좋은 모습은 역시 일하는 모습이 아닐까. 자신의 미래를 위해 또는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어느 모습보다 든든한 것은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친구와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 간적이 있었다. 우리차가 들어서자 예외 없이 주유원이 달려왔다. 하지만 우리 앞에 서있는 사람은 젊은이가 아닌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다. 그곳을 나오면서도 내내 그분의 모습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 연세에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인가 보다.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아니 어쩌면 그분을 고용한 주인의 마음 씀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래 되었음에도 지금도 기억이 나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노인의 날 특집으로 보여줬던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어느 사업체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취재를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많은 직원들 중에는 연세가 60에서 70대 후반 되시는 분들이 많았다. 노인들을 고용한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 곳 관계자는 그 일은 그 분들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아는 분이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그분들의 능력을 우대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아무리 일을 잘하고 몸이 건강해도 정년만 되면 퇴직을 해야 한다. 현 세태와 동떨어진 그 곳 책임자의 채용관은 보는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주고 있었다.

“젊은 나무는 쉬지 않고 자란다.”라는 서울 지하철역에 붙었던 문구가 생각난다. 어찌, 자라고 싶은 것이 젊은 나무뿐일까. 또한 푸른 것이 젊은 나무만의 특권이 될 수 있단 말이겠는가. 늙는다는 것, 결코 즐겁지도 반갑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는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만 하는 어쩌면 우리인생의 식량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 드는 것에도 기술이 있다고 말한다.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월을 즐기며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늙어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계획을 해보아야겠다.

길 것만 같았던 겨울도 어느새 지나고 마당에는 파릇파릇 새싹들이 움이 트는 바야흐로 봄이다. 언제나 지나고 나면 후회가 되는 지난날들이다. 남편과 차를 타고 넓은 들판사이를 달리던 때가 생각이 난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놀은 붉다 못해 핏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넋이 나간 내게 남편이 물었다. 왜 저렇게 붉은지 아냐면서 말이다. 노을이 진하면 진할수록 그해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는 뜻이며, 다시 말해 가뭄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늘의 붉은 노을빛은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과일 또한 타는 듯 한 태양을 이겨내고 비를 많이 맞지 않은 것이 더 붉고 당도가 높은 것처럼, 우리도 굴곡진 인생일지라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며 맞는 황혼은 그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 터이다. 어쩌면 노인들은 가만히 안방에 앉아서 효도 받기를 바라지 않을 지도 모른다. 비록 몸은 늙었을 지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푸른 나무가 되어 우리 사회를 비춰주고 싶을 그들이다.

우리 사회가 `젊은 나무'가 되고 싶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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