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 모양의 석탑 장락동 7층 모전석탑
벽돌탑 모양의 석탑 장락동 7층 모전석탑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1.03.0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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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탑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돌로 만든 석탑, 나무로 쌓은 목탑, 벽돌 탑인 전탑으로 분류한다. 대개 우리나라는 많은 화강암을 바탕으로 한 석탑이 많고, 나무가 흔한 일본은 목탑이 중국은 벽돌을 구워 만든 전탑이 많다.

우리나라 보물 459호(1967. 6. 23)로 지정된 제천 `장락동 7층 모전석탑'은 마치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돌을 네모지게 벽돌처럼 다듬어서 쌓은 탑이다. 모양만 벽돌탑이라는 뜻의 모전석탑이라 칭한다. 우리나라에 모두 24개의 모전석탑이 존재하는데, 경주의 분황사탑, 여주 신륵사탑이 가장 대표적인 모전석탑이다. 이 모전석탑은 석탑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인 돌로 튼튼한 탑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에서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천 장락동 7층 석탑은 전체가 7층에 이르는 높은 탑으로 각 층의 줄임 비율이 적당하여 장중한 기풍을 주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심한 피해로 붕괴 직전에 있었는데 1967년 해체 복원했으며 이때 7층 맨 위 지붕에서 꽃 모양의 청동조각이 발견되어 정상에는 청동제의 장식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각 층의 지붕(옥개석)은 모두 계단 모양으로 벽돌탑 특유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추녀도 짧게 마무리하였다. 지붕 모서리에는 구멍(풍령공)이 뚫려 있고 7층의 옥개석에는 철제 고리도 남아 있어 원래는 풍경(방울)이 달려 있었을 것이다.

탑신 전체에는 표면에 회를 칠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주목된다. 만드는 형식이나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는 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탑은 기본적으로 부처의 사리 또는 경전을 모시기 위해 만든 것인데, 1967년 해체 때 5층 지붕에서 사리장치로 추정되는 네모진 화강암 석재가 나왔으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금동불상, 금동조각, 백자 조각, 철 조각만이 발견됐을 뿐이다. 아마도 도굴에 의해서 사라진 것으로 생각되어 안타깝다.

현재 이곳 주변에는 장락사라는 사찰이 건립되어 있고 동쪽의 계곡이 절골로 불리는 지역으로 고대부터 많은 불교 관련 전설이 이어지고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이 모전석탑이나 사찰에 대한 내용은 확인할 수가 없다. 2003년 탑 주변의 절터를 발굴한 결과 이곳의 사찰이 삼국시대 말에 세워져서 조선시대까지 6차례 정도 다시 지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출토된 유물은 삼국의 문화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곳 제천지역이 고대 여러 국가의 쟁탈지로써 위치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장락동의 모전석탑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음성에도 5층 모전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1975.8.20.)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벽돌모양이 아닌 완전한 석탑형식 탑처럼 보이지만 각 층 사이의 몸체를 형성하는 부분이 오늘날 보도블록과 같은 모습이기에 모전석탑이라 칭한다. 고려전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탑이 만들어지던 시기에는 이 탑을 향해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지금은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어느 절에 있었던 탑인지 조차 알 수 없음에 부분적으로 파손된 만큼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돌을 다듬어서 벽돌처럼 만들고 그것을 탑으로 쌓아서 정성을 들이는 우리 조상의 염원과 기원을 느끼는 차원에서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분들에게 한번 쯤 답사를 권하고 싶다. 코로나가 물러가고 일상이 회복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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