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윤석열은 여야의 합작품
정치인 윤석열은 여야의 합작품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3.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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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하필이면 사직하기 하루 전, 하필이면 대구를 찼았다. 거기서 했다는 “고향을 찾은 느낌이다”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그는 서울 출신이다. 초임 검사 시절 대구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긴 하다. 그렇더라도 보수의 본방인 대구에서 제2의 고향 운운하며 파란만장했던 공직을 마감한 것은 그의 향후 거취를 추정할 결정적 단서가 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다. 그의 막판 행보를 사실상의 정계 진출 선언으로 해석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여당에서는 일제히 “윤석열이 마침내 정치적 야욕을 드러냈다”며 십자포화를 쏘아대고 있다. 그 `야욕'이 어디서 잉태되고 양육됐는 지 돌아보는 성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 환호작약하는 국민의힘도 측은하기만 하다. 윤 전 총장이 실제 청치판에 뛰어든다면, 그 상황은 양대 정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 마자 공직 배제 5대 원칙을 천명했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의 흠결이 있으면 고위 공직에 발탁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그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을 완벽주의자로 꼽혔다. 검찰이 그의 허물을 들쑤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검찰이 특수통 검사들을 동원해 가혹할 정도로 조국 일가를 턴 것은 맞다. 그렇더라도 그에게서 드러난 여러 의혹과 혐의들은 서민의 눈높이는 물론 진보적 윤리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정권은 진보가 추구했던 윤리적 가치 대신 조국이라는 개인을 선택했다.

대통령이 호언했던 인사 기준은 “도덕적으로는 논란이 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넘어가자”는 현실론으로 후퇴했다. 이 지점이 20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중도가 여권에서 대거 이탈하는 포인트가 됐다. 과실은 여권의 압박을 무릎쓰고 수사를 강행한 윤석열에게 돌아갔다. 일약 대선 후보 반열에 오르고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기 시작했지만,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최근 변창흠 국토부장관이 LH 임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해 “불법은 아니다”고 했다가 여당 의원들의 집중타를 맞았다. 민망스러운 모습이다. 변 장관은 법원이 판결한 법적 하자조차 부정하기에 이른 집권층의 추락한 윤리 의식을 대변했을 뿐이다. 한없이 관대해진 자신들의 도덕적 기준을 왜 힘없는 LH 직원들에겐 적용하지 않느냐는 항변엔 어쩔 것인가?

윤석열의 몸집을 더 키운 것은 검찰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권의 무능이다. 우선 정파간 협의와 소통에 철저히 실패했다. 공수처법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민주당 단독으로 개정해야 했다. 180석의 위용은 독선을 거치며 초라해 졌다. 법무장관이 밀어붙인 윤 전 총장의 업무 배제와 징계는 모두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검찰개혁이 곧 윤석열 찍어내기'라는 일각의 심중에 확신을 실어줬고 윤석열에겐 권력에 저항하는 전사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검찰에 남겨진 6대 범죄 수사권까지 회수하려는 중수청 추진만 해도 그렇다. 일사천리로 몰아붙이는 졸속도 문제지만,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기소된 당사자들이 앞장을 선 모습은 처량하기까지 하다. 윤 전 총장에게 변신을 시도할 구실을 만들어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말이다.

국민의힘의 지리멸렬도 윤석열의 도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대에 올릴 배우가 없어 객석서 애만 태우다가 윤석열이 등장해 무대를 종횡하자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하고 지지하며 보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명색이 제1 야당이 경쟁력 있는 대선 후보 하나 내지못하는 가련한 처지에 대한 자책은 없었다. 그저 윤석열을 빌어 여권 때리기에만 몰두했다. 당 지지율이 20%대 초중반서 정체하는 현실은 외면한다.

윤 전 총장이 정치에 입문해 보수 재건을 선도할 지,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 지 전망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여야가 이제 윤석열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자신들을 차분하게 돌아봐야 할 때가 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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