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선)하다는 것
착(선)하다는 것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 승인 2021.03.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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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사무국장

 

줌(zoom)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텍스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그날의 주제는 단연 니체가 죽었다고 말하는 신은 무엇인가였다. (그걸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가 남긴 주옥같은 어록을 들추며 그의 천재성과 난해함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다시 니체 사상이 집약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문득 그의 선함에 대해 생각했다. 난 그가 마음이 보드랍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채찍에 맞는 말을 보호하기 위해 마부를 막아 절규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예전엔 착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엔 유약하고 자기 의견 없이 끌려다니는 매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또 보이는 곳에서는 선함의 페르소나를 쓰고 연예활동을 하다가 과거 학교폭력 이력이 알려지면서 폭망한 연예인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사실 나도 착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이고 착한 사람이 되어 사는 게 작은 목표 중에 하나다.

선함과 관련해서 그림 형제 민담집엔 <거지 할멈> 이야기가 있다. 구걸 다니는 노파를 한 소년이 집으로 들여 난로 곁에서 몸을 녹이도록 해준다. 하지만 너무 난로 가까이 다가간 노파는 옷에 불이 붙어 타기 시작하고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소년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다. 불행하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읽던 나도 당황스러운 결말이다. 친절한 소년은 노파를 집으로 불러 불을 쬐게 할 정도로 행동파의 면모를 보이지만 본의와 달리 그 노파를 불에 타죽게 만든 것이다. 선의로 도와주려고 한 일이 뜻밖의 끔찍한 결과를 낳은 상황이다. 이 민담을 두고 한국 문학치료학회 신동흔 교수는 소년을 소설형 인간이라고 말한다. 생각은 많으나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 고민만 하다가 인생을 낭비하는 유형이라고.

하지만 한 사람의 참모습은 `위기'때 드러난다. 내가 편하고 안전할 때 가벼운 선의를 베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상황을 하나 더 만들어 노파와 소년 외에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면 이야기의 끝은 달라졌을까?

<니체의 인간학>을 쓴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니체를 `온화하고 행실이 바르며 겁 많고 선량하고 비열하며 순진'한 사람이었다고 조롱(?)한다. 저자는 착한 사람=약자라는 이데올로기 삼아 착함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착한 사람은 약자다.'를 비롯하여 착한 사람은 안전만을 추구하며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저자의 조롱처럼 착한 사람은 무능하고, 일 처리가 미숙하며, 무사안일한 부류일 수도 있다. 직장에서도 평가할 때 딱히 특이점이 없으면 착하단 말로 얼버무린다.

하지만 정말 착한 사람은 뒤처지는 사람일까, 노예도덕으로 살지 말라고, 위험을 무릅쓰라고 말한 니체의 말 속에 착함을 버리라는 뉘앙스는 어디에도 없다. 그게 왜 잘못되었다는 건가. 엊그제 기사에서 어느 치킨집 사장님 미담을 읽었다. 코로나19로 힘들지만 가게 앞을 서성이는 형제를 불러 치킨을 먹이고 그것을 인연으로 형제를 보살피고 동생의 머리도 깎아주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존재자로 존재하는 한 어려운 중에 행동한 착함은 스스로 진실한 존엄임을 나타내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인식으로 인류는 이어질 것이다.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을 표시 내는 것은 착함을 행동하는 것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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