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네 친구, 문방사우를 만드는 충북의 장인들
선비들의 네 친구, 문방사우를 만드는 충북의 장인들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21.03.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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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예전의 떠들썩한 입학식은 없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를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에선 설렘이 느껴진다. 이맘때면 어른들에겐 고민거리가 생긴다. 바로 입학선물. 이 즈음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항상 “입학 선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참 많은 이들의 고민거리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리스트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학용품이다.

요즘만큼 다양하지는 않지만, 과거 공부를 업으로 삼았던 선비들에게도 꼭 필요한 학용품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종이, 붓, 벼루, 먹은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해서 선비들이 늘 가까이 두어야 할 친구로 여겼고, 중국에서는 이 네 가지 용품을 “문방사보(文房四寶)”라 하여 공부방의 보물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연필조차 많이 쓰지 않는 요즘이기에, 문방사우는 정말 먼 과거의 물품이 되어버린 듯하지만, 충북에는 아직도 이 네 친구를 만드는 장인들이 존재한다. 괴산, 단양, 증평, 음성 등 충북 각 지역에서 전통을 잇는 장인들의 손에서 지금도 공부방의 네 친구는 계속 태어나고 있다.

그 중 닥나무 껍질로 만드는 한지는 뛰어난 보존력으로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비록 중국에서 수입되는 값싼 종이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지만 전통을 지키려는 장인들의 손에 의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충북에서 한지를 만들어가는 이는 바로 충북 무형문화재 제17호 보유자 괴산의 안치용 한지장이다. 연풍면 신풍마을에서 50여 년째 전통한지를 잇는 장인은 우리 생활에 녹아들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하며 새로운 한지를 개발하고 있다.

두 번째 친구인 벼루를 만드는 충북의 장인은 충북 무형문화재 18호 보유자 단양의 신명식씨다. 4대째 가업을 잇는 신명식 벼루장은 단양의 특산품 자석(紫石)을 이용해, 단양만의 특색을 갖춘 자석벼루를 만들고 있다. “양간석”이라고도 불렸던 자석은 특유의 붉은 빛깔과 먹이 곱게 갈리며 잘 마르지 않는 특성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좋은 벼루의 재료로 이름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최고 명필 한석봉도 자석벼루를 썼다고 하며, 조선을 방문한 외국 사신들에게 자석으로 만든 벼루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세 번째 친구인 붓을 만드는 충북의 장인은 충북 무형문화재 29호 보유자 증평의 유필무 필장이다. 유필무 필장의 붓은 그야말로 작품이라고 할 만큼 정교하면서도 아름답다. 특히 족제비나 양의 털로 만드는 모필붓은 30여 개의 공정을 거쳐야 할 만큼 복잡한 과정을 요한다. 필장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타협 없이 전통을 살리며 붓을 만들고 있다. 또한, 식물의 뿌리와 줄기를 붓털로 사용하는 초필붓도 유 필장의 장기 중 하나다.

아쉽게도 충북 무형문화재 중 문방사우의 마지막 주인공인 먹을 만드는 장인은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음성군에 30여 년간 전통방식으로 먹을 만드는 한상묵 묵장이 있어 전통먹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한상묵 묵장은 소나무 뿌리를 태워 만드는 송연먹과 콩, 유채, 동백기름을 태워 만드는 유연묵을 주특기로 하며, 그 기능을 인정받아 고용노동부 숙련기술전수자로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한상묵 묵장이 보유한 먹 제조기술의 무형문화재 지정도 최근 추진되고 있어, 새로운 무형문화재의 탄생이 기대된다.

일찍이 충북은 기호사림의 성지로서 선비들이 꿈꾸는 이상향이자 유교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그 문화적 전통은 선비들의 네 친구를 만드는 장인의 손끝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조만간 네 명의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충북의 문방사우가 한자리에 만나, 마치 네 명의 친우가 조우하듯 글과 그림을 나누는 멋진 자리가 마련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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