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아, 그렇구나!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1.02.2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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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이 현관문에 붙어 있다며 `우편물 도착 재방문 안내장'을 들고 들어온다. 기다리던 등기 우편물이라며 잘 받아두란 당부를 하고 나갔던 터라 미간에 주름을 살짝 지으며 내게 내민다. `그럴 리가 없는데…'하며 일단 넘어갔다. 며칠 후 이번엔 문자가 왔단다. `우체국으로 찾으러 오시오'란다. 그날은 집에 같이 있었기에 나의 누명은 벗겨졌으나 그 화는 우체국 담당자의 전화기로 향했다. 그 화는 `분명히 집에 있었다'와 `아무도 없더라.'의 언쟁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밖에 나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 봤다. 이럴 수가! 현관 초인종이 고장이었다. 요즘은 주 출입구에서, 지하 출입문 또는 1층 현관에서 확인되니 현관 초인종은 누를 겨를이 없어 몰랐던 것이다. 바깥사람과 집안사람의 소통 단서인 초인종이 고장이라 제 기능을 못 해 안 눌러졌던 것을, 바깥사람은 안에 사람이 없으니 대답이 없는 것이라 짐작했고, 집 안 사람은 왔다 가지 않은 것이라 짐작하고 서로 내가 옳다며 소통이 안 돼 벌어진 사단이었다.

서로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살펴봤으면 눈치 챘을 일인데 넘겨짚고, 경험을 바탕에 두고 걸러 생각하고, 내 생각이 옳다며 판단한 결과였다. 이런 일은 동서고금을 두고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그림책 <나 진짜 곰이야!>를 통해 영국의 그림책 작가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도 이야기를 한다. 때때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레짐작이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림책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잠시 쉬기 위해 숲 속에 둔 여행가의 열기구를 본 곰, 곰이 경험한 지식으로는 열기구 바구니가 이상한 동굴로 보였다. 냉큼 올라 타보니 역시 깜빡 잠이 들 정도로 아늑하고 좋은 굴이었다. 잠든 사이 둥둥 떠가고 있던 풍선이 날아가던 새 부리에 찔리는 바람에 가장행렬假裝行列이 한창인 도심 속으로 불시착한다.

가장행렬이 무엇인가! 운동회나 경축일에 사람들이 제각기 여러 모습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꾸미고 벌이는 행렬 아니던가! 여러 동물 모양의 탈을 쓰고 있던 사람들은 곰을 곰이라 보지 않고 그들의 식견대로 `곰의 탈을 쓴 사람'으로 여긴다. 멋지게 꾸몄다며 몰려드는 인파로 겁이 나 있는 곰에게 다가간 기자는 인터뷰 명목으로 방송국으로 데리고 간다.

이름이 뭐냐는 질문에 겁이 나 `크릉'거린다. `아, 크릉씨군요.'라며 인간의 말로 해석한다. 멋진 옷과 가면을 어디서 구했냐는 질문에 주변을 살펴보느라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아! 비밀로 하고 싶다고요.'라며 사람들은 넘겨짚는다. 상황에 떠밀려 공연장까지 가게 된 곰은 흘러나오는 음악에 흥이나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본 관객들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재미있는 사람이라며 몰려든다.

사람들은 곰의 행동에서 두려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본 후 그들의 잣대로 판단을 내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끝까지 곰의 탈을 쓴 사람이라는 잘못된 결론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곰은 곰이지만 곰이 아닌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곰은 어떻게 됐을까? 이런 관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보면 짧은 글, 적은 분량의 책이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다. 타성에 젖어 초인종이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듯이 `내가 경험한바'에 바탕으로 하는 판단을 때때로는 주의할 필요성을 느껴본다. 애먼 사람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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