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 이화원
역사의 아이러니 이화원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2.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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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몇 년 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명소 중 베로나에서 본 줄리엣 상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소설 `로미오와줄리엣' 무대였던 베로나에 그럴듯하게 연출해 놓은 가짜 집과 줄리엣 상을 보려고 1년에 15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보면서 관광명소란 스토리텔링의 치장이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 북경에 있는 이화원은 스토리텔링의 보고라 여겨집니다. 이화원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거니와 북경을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빼놓지 않고 들리는 명소입니다. 서태후의 별장, 나라님인 그녀가 오로지 즐기도록 만든 여름정원이라 해서 오밀조밀한 정원이 딸린 집 한 채이겠구나, 무심하게 따라나섰다가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호수 앞에서 말을 잃고 마는데요. 둘레는 6.4㎞, 직경이 8㎞, 이쪽 끝에서 저쪽 끝이 아련히 보여서 `이게 호수야?' 하면서 관광객들은 놀라 다시 확인해 보곤 합니다. 여름정원의 3/4을 차지한다는 곤명호라는 호수,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수평선이 펼쳐지는 드넓은 호수가 사람들이 파고 흙을 져 나르며 만든 인공호수라는 겁니다.

1888년이라니, 기계의 힘을 빌릴 수도 없는 시기여서 오로지 수작업으로 바다 같은 호수를 만들었다니 놀랍기도 하거니와 피땀 흘리는 백성이 생각나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서태후는 요샛말로 갑질의 최극존이라 할까요?

호수 옆에 60m 높이의 만수산이 있습니다. 호수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이 쌓인 것이라니 이것도 인공산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백성들 피땀의 높이거나 원한의 분수령 높이가 이만큼일까요? 북경의 지형은 5도를 넘는 경사가 없는 드넓은 곳이어서 해발 60m의 만수산은 멀리서도 우뚝하게 시선을 끌어 잡습니다.

곤명호와 만수산, 그 사이에, 별궁에서 호수로 나가는 통로인 길게 이어진 건축물이 눈을 끌어당깁니다. `정랑'이라고 하는데요. 서태후는 건축가와 예술가들까지 동원해 273칸이나 되는 728m의 건축물을 조성하고 그곳을 `홍루몽', `서유기' 같은 고전소설 속 명장면과 선비들이 즐기던 문인화 등 4000쪽이나 되는 그림들로 화려하게 치장했습니다.

양쪽이 훤히 트여서 정원의 온갖 나무들과 푸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랑을 서태후가 정인과 함께 천천히 걸어나가는 걸 상상하게 됩니다. 호수에는 석방(石舫)이라는 대리석으로 조각해 만든 길이 36m의 배가 묶여 있습니다. “물(백성)은 배(왕조)를 띄울 수도 있고 전복시킬 수도 있지만 <석방>돌배는 끄떡없음”을 비유해 만들어졌다 합니다.

그녀의 식생활도 상상을 초월하는데요. 한 끼 식사에 산해진미 128종, 반찬 30종, 주식 60종으로 농민 1만 명의 하루 양식을 한 끼 식탁에 올렸다고 하네요. 그렇게 먹고 마시고 날마다 하는 일이란 것이 상대를 갈아치우며 즐기는 것이라니, 밤마다 마음에 드는 사내를 골라 마음껏 농락하다가 새벽녘이면 가차없이 수장해버렸다는 서태후의 기가 찬 악행은 이화원 곳곳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만주족인 여자가 미인이라고 궁에 들어가 임금의 눈에 들어 황후가 되고 아들이 9살 때 섭정을 시작해 20살에 아들이 죽자 여동생의 아들(4살)을 왕위에 오르게 하여 48년간이나 군림하다가 74세에 죽었다는데 그녀. 끝없는 사치와 폭정이 나라패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불 보듯 뻔한 결과 아닐까요?

폭정을 자행하고 역사를 뒷걸음질치게 한 그녀의 행적은 몰매를 맞아 마땅하지만 200여 년의 세월 속에서 그녀의 행적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되어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1년에 백오십만 명 넘는 관광객이 몰려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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