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핀 꽃처럼
막핀 꽃처럼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2.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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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꽃소식이 눈길을 뚫고 잰걸음으로 나에게 왔다. 앵글에 잡힌 작은 꽃은 얼음 속에서 뾰조롬히 눈을 뜨고 있다. 언 땅의 하얀 눈 속에 저리도 깜찍한 생명을 피워내고 있음을 그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여린 몸으로 추위를 견뎌내고 앞에서 봄을 이끄는 얼음새꽃. 마치 제 소명인 양 비장하기까지 하다.

곧이어 매화와 동백의 개화가 들려온다. 유채꽃으로 제주도가 사람들로 들썩인다. 벌써부터 귀재고 기다린 남녘으로부터의 소식이다. 서서히 지펴지기 시작한 꽃불이 먼 곳에서 찾아온 친구처럼 반갑다. 섬에서 유채꽃이 전해지면 정말 봄이 온 것 같다. 그러면 성큼 봄빛이 내 안에 들이친다.

이때부터 나는 봄에 홀려 눈이 먼다. 나뭇가지 끝에 초록의 잎눈이 보이고 진달래는 분홍빛이 감돈다. 온 산으로 꽃불이 번지는 2월 환각을 본다. 이맘때 찾아오는 고질병이다. 입춘(立春)도 되지 않아 개화를 손꼽아온 나처럼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성급하다. 잎보다 먼저 핀다.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일찍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내가 꽃에 집착하게 된 건 쉰이 되면서부터다. 가을을 좋아하던 내가 봄으로 바뀐 건 나이가 들었다는 슬픈 증거다. 어릴 때는 꽃다운 나이라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이제 더 이상 꽃이 되지 못하면서 더 예쁘게 보이는 이치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의 카톡 프사(프로필사진)는 꽃으로 도배되어 있다. 더 나이가 들면 꽃 대신 손자 사진으로 바뀐다. 이렇게 인생의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체국의 수수꽃다리가 핀 게 10월이었다. 4월에 피었다 지고 또다시 피었다. 작년 날씨가 유난히 포근하여 가을을 봄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정상적인 시기에 핀 후 비정상적인 시기에 거듭 피운 꽃인 막핀 꽃이다. 이 꽃을 보면서 비련의 주인공을 보듯 애잔했다. 핀 후 얼마 있다가 봄에 또 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 해에 두 번을 피자니 얼마나 바쁘고 고될까 하여 안쓰러웠다.

나는 언제 꽃을 피웠을까. 여름엔 정열적으로 타오르긴 했는지. 깊게 새겨진 각인이 없다. 뒤도 돌아볼 새도 없이 오느라 계절이 다 지나가도 몰랐다. 이제 와 꽃을 피우고 싶어 가을에 속이 탄다. 조금씩 외로움을 준비해야 하는 겨울이라고 시간은 귀띔해 준다.

푸릇하던 청춘이 황금색으로 물이 들려 한다. 푸른 날들을 어찌 보냈는지 모르건만 노을로 붉어진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끝없이 견뎌 온 어느 날, 깜깜한 밤하늘에 별이 보인다. 옆에 달도 떠 있다.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나의 인내가 빛을 본다. 30년의 대장정이었으니까 악운도 지쳐 쓰러질 만도 하다.

아이는 커서 어엿해지고 9년 전에 시작한 그이의 사업도 순항이다. 요즘 주인장의 버블그린호는 충천(衝天) 중이다. 성실한 인내에 대한 응답을 쉰이 훌쩍 넘기고서야 듣는다. 그래도 들이 좋다.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외면하지 않고 비껴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절로 나비춤이 추어진다.

돈 걱정으로 웃어보지도 못하고 가버린 젊음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봄이 아쉽다.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려도 보고 싶고 고운 봄길 위에 쏟아지는 햇발도 쐬고 싶다. 이미 내 앞엔 가을 같은 인생의 시간이 있다. 초라하고 앙상한 겨울만이 기다리고 있는 계절. 늦가을에 핀 수수꽃다리처럼 봄이라 여겨지면 주저하지 않으리라. 필 때가 아니라 해서 일부러 숨기지 않으리라. 막핀 꽃처럼 계절을 잊었어도 좋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연극의 한 대사를 주인공이 되어 읊조리며 피어날 터이다.

“봄에 한번 꽃 피우고 진 게 아쉬워서 뒤늦게 다시 피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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