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20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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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오 소 희(충북농협)

밀려드는 식곤증을 쫓으려 애쓰는 금요일 오후, 충북농협본부 뒷마당에서 열리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살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장터엔 우리 농산물을 사려는 도시민들로 북적거린다. 보은한우고기, 충주사과, 괴산고추, 음성고추, 단양마늘, 버섯, 오이, 복숭아 등 철철이 바뀌는 우리 농산물 앞에 그 명성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길게 서 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일은 물건 값을 깎으려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생산자와 도시민을 직접 하나로 연결해 주는 장터이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20∼30%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간혹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조금 늦게 장터에 들르면 구입하고 싶은 물건이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좋은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니 금요장터엔 시일이 지날수록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처음 금요장터를 열게 된 것은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인해 많은 농가들이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을 돕기 위해 '우리 농산물 사랑운동' 일환으로 농협에서 시작하게 된 것인데 지금은 도시민들이 더 기다리는 장날이 되었다.

장터! 얼마나 정겨운 단어인가. 얼마나 많은 애환이 담겨 있던 우리네 삶의 장소였던가. 논 한마지기에서 쌀 한 가마니도 못내 던 시절, 장이 서는 날이면 시골 사람들은 동트기 전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십릿길 장에 다녀오려면 새벽부터 서둘러도 하루해가 짧기 때문이다. 내다 팔 곡식은 적고 사야 할 물건은 많았지만, 그래도 장날을 기다렸다. 굶어가며 아껴둔 곡식 등을 등에 지고 길을 나서면 등짐보다 더한 삶의 무게가 따라 나섰다.

휘어진 산길 돌고 돌아 장에 도착하면 장꾼들은 난전 가득 물건을 펼쳐놓고 있었다. 이리보고 저리 봐도 못미더워 이 난전 저 난전 값을 비교해 본 후 물건을 사들면 각설이패의 흥겨움이 귀에 들어왔다. 장바닥에 질펀히 앉아 각설이패의 구성진 타령에 울고 웃다 보면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나온 뱃속은 요동을 쳤다. 국밥집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우며 이 소식 저 소식 귀동냥하노라면 해는 서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비록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장터엔 인정과 여유가 있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집 밖으로 한발자국만 나가면 장날보다 더 많은 물건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왜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바쁘게 살다보니 도심밖에 있는 장터를 찾아갈 시간이 없다. 그것을 해결해 주는 곳이 금요장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금요일이 되면 이웃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기도 하고, 근무 중 잠시 시간을 내 다녀가는 직장인들도 있다. 특히 명절 특산물 상품을 판매할 때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손자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장을 보러 나온다. 그 모습은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절로 따뜻해진다.

물건을 구입하려는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판매자 역시 삶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시부모님이 지은 농산물을 자동차에 싣고 오는 며느리도 있고. 부부가 함께 다정스럽게 물건을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 음성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젊은부부는 얼마나 다정한지 아주머니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이곳에 오는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몸은 피곤해도 밝은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볼 때 우리 농산물 사랑운동은 어떤 농사보다도 풍년작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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