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2.23 17: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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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코로나19 백신(Vaccine)의 국내접종이 마침내 26일부터 시작된다.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백신을 맞은 일이 지난해 12월 8일이었으니 꼬박 80만의 일이다. 코로나19 백신의 빠른 개발과 속도 있는 접종으로 인류는 바야흐로 감염병에서 비롯된 팬데믹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백신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유일한 희망이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백신에 대한 이러한 맹목적 확신은 마땅히 경계하여야 한다.

백신의 가공할 위력은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천연두의 퇴출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충분히 증명된다. 천연두가 창궐했던 18세기,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바이러스를 통한 천연두의 면역 효과를 처음 확인한 이후, 1806년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제너에게 쓴 “후세대는 천연두라는 것이 존재한 사실을 역사책을 통해서만 알 것”이라는 감사편지만 봐도 백신의 엄청난 효과를 알 수 있다.

백신은 특정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생기게 하는 의약품을 총칭한다. 에드워드 제너가 인류 최초로 백신을 발견한 것도 1796년 우두에 걸렸던 노동자들이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이다. 제너는 이를 계기로 당시 9살에 불과했던 소년에게 고의로 우두를 감염시켜 천연두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면서 천연두 면역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백신은 접종을 통해 바이러스가 다녀간 `흔적'을 남김으로써 다른 숙주를 찾도록 경로에 혼선을 주는 것이다. 이를 많은 인간의 `몸'에 뿌림으로써 집단면역이라는 광범위한 `흔적'을 만들어 바이러스가 갈 곳을 잃게 만드는 것이니, 백신은 치료가 아닌 예방에 한정된다.

인류를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해방시킬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는 백신이 집단면역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은 사뭇 잔인했다. 인류는 천연두 면역을 위해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인체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우두 바이러스를 살아있는 상태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운송하기 위해 스페인의 고아 20명이 제물이 되어야 했다. 20명의 고아 중 먼저 두 명을 강제로 감염시킨 뒤 완치되기 전에 고름을 채취하고, 이를 두 명씩 릴레이식으로 인체에 옮기는 방식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백신을 접종했다. 인류 최초의 백신 국제 접종 프로그램을 위한 항해에서 살아남은 고아는 한두 명에 불과했고, 그들의 거룩하지만 억울한 희생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의약 기업 셀트리온이 국내 최초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성공했다. 지난 5일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조건부 허가가 결정되었는데, 세계에서 세 번째 쾌거이다. 셀트리온이 개발한 `렉키로나주 960mg(성분명 레그단비맙)은 이미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항체 치료제이다. 체중과 조건에 따라 증상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뜻밖에도 시장성을 우려하는 생뚱맞은 반응을 낳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최근호에서 한국의 백신 접종이 늦은 이유에 대해 정부가 백신의 국내 생산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사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국내 의약품 제조사를 독려하며 백신의 국내 개발을 적극 장려해 왔다. 주목할 것은 우리나라가 백신의 국내 생산을 독려하면서도 치료제의 개발에 상당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데 있다.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처하는 방식이 예방에 우선해야 함은 자명하다. 그리고 병에 걸릴 경우 이를 치료해서 건강한 몸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코로나19처럼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는 감염병 창궐의 경우 확산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약한 유전자는 퇴출시키고 숫자가 많은 남은 사람들을 살리는 방식인데, 그렇게 희생당하는 생명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해당한다. 코로나19로 더 큰 경제적 위험에 노출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와 같다. 이래도 못마땅하고 저래도 불만인 백신 타령 대신 치료제의 성공적 개발을 칭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가난한 사람들도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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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2021-02-23 23:51:17
정직한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