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기다림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1.02.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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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이다. 보행자 신호등이 이미 반쯤 지났을 때 횡단보도에 들어섰으니 마음이 조급했다. 부지런히 걸어도 미처 다 건너기 전에 신호는 바뀌었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 기사는 내가 길을 다 건너기를 느긋이 기다려 주었다. 잠시지만 기다려준 운전자가 고마워 멀어져가는 트럭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릴 때, 버스를 타려는데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으면 더 길게 느껴진다. 휴대용 전화가 없던 시절 남편 귀가가 늦으면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처음엔 `곧 오겠지'하다가 공중전화로 늦는다는 연락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하고 원망을 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게 된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님에도 기다림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다림은 배려이다. 약속 시간에 상대가 시간을 지키지 않고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늦을만한 이유가 있으려니 하고 느긋하게 기다려주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반면, 피치 못할 일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약속시간 5분도 안 지났는데 `왜 안 오느냐'고 득달같이 전화를 걸어오면 미안하던 마음도 사라지지 않던가. 언젠가 약속시간이 제법 지나 도착한 친구가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나도 조금 늦었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기다림은 정성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밥솥에 갓 지은 밥도 뜸이 들어야 밥맛이 좋으며, 나물반찬도 양념이 잘 스며들게 손끝으로 조물조물 정성을 들여야 맛이 난다. 발효가 되어야 깊은맛을 내는 김치나 각종 젓갈이 그렇고, 오래 묵을수록 몸에도 좋다는 장맛이 정성과 기다림 없이 얻을 수 있는 맛일까 싶다.

기다림은 기쁨을 준다. 두 돌 지난 아이가 말이 늦다고 걱정하다가 어느 날부터 말문이 트여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말들을 조잘댈 때 그 기쁨을 무엇에 비길까. “다른 아이는 숫자 열까지를 세는데, 우리 아이는 왜 아직 듬성듬성 건너뛰며 숫자를 셀까요.” 며느리의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며 기다려 보자고 하면서도 내심 조급함이 일었었다. 불과 며칠이 지나자 하나부터 열까지를 순서에 맞게 세는 걸 보고 가족 모두 손뼉치며 환호하지 않았던가. 아이에게 며칠 사이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기다림에 보답을 한 것이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기다리며 산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이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건강하게만 자라라'마음먹지만 학교에 가면 공부를 남들보다 잘하기를 고대하고, 아이가 성장하여 취업을 하면 좀 더 높은 지위로 승진하기를 기다린다. 또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길 소망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염원한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은 끊임없는 기다림의 연속인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래도 기다림은 희망이다. 이제 머지않아 추운 겨울도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올 터이다. 해 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일 년이 넘게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힘든 나날을 보내지만 희망을 갖고 아름다운 날들을 기다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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