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사의 조용하게 수용하길
민정수석 사의 조용하게 수용하길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2.2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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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지난해 말 대통령이 신현수 민정수석을 임명했을 때 법무부와 검찰의 볼썽사나운 난투극이 어느 정도 정리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왔다. 최소한 양쪽이 숨을 고를 수 있는 휴전기가 도래하지는 않겠느냐는 관측이 대세였다.

시기와 정황들이 이런 예상을 뒷받침했다. 법무부가 기세 좋게 몰아붙였던 검찰총장 징계는 법원에서 결정타를 맞고 좌초했다. 이 징계안을 재가한 대통령은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를 해야 했다.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호칭하며 검찰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닌 검찰 출신 민정수석을 발탁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정권과 검찰 사이에 관계 재설정을 위한 화해 무드가 들어설 것이라는 시그널로 해석됐다.

더욱이 신 수석은 그냥 검찰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이 참여정부 민정수석을 지낼 때 비서관을 맡아 보필했고, 대선캠프에서도 요직을 수행하며 승리에 기여했다. 정권 출범 후에도 국정원 기조실장을 맡아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거들었다. 대통령과의 돈독한 관계는 그에게 힘이 실릴 것이고, 그래서 검찰개혁의 속도와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다. 박범계 법무장관의 첫 검찰 인사에 검찰총장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법무부 인사는 일방적이었고, 민정수석은 사표를 내고 휴가를 떠나 버렸다.

신 수석이 검찰 인사에서 철저히 배제된 사실은 청와대도 숨기지 않는다. 법무장관이 민정수석과 조율 없이 대통령을 독대해 인사안을 승인받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민정수석이 패싱된 사실을 모르고 인사안을 재가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해명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포함해 청와대 전체가 지금 난감한 지경에 빠진 이유가 법무장관 개인의 독단 때문이라는 얘기다.

청와대의 설명은 석연찮은 여지를 남긴다. 우선 청와대가 심각한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법무장관을 지목했는데도 여권에서 그를 비판하거나 책임을 묻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장관이 인사안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민정수석과 협의했을 것으로 오판하게 한 기망은 없었는지도 따져야 할 텐데 말이다. 당사자인 법무장관도 “신 수석을 만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한마디 유감 표명이 없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만 청와대는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청와대가 “대통령은 당신이 장관에게 무시당한 사실을 몰랐다”며 복귀를 호소하고 있지만 신 수석은 사의를 철회할 뜻이 없는 모양이다. 휴가 중에 지인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여전히 단호하다고 한다. 그가 오랫동안 각별한 인연을 유지해온 대통령과의 결별을 무릅쓰고 사직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만큼 모욕감과 배신감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민정수석은 장관급이다. 역할이 없다고 판단되면 장관 자리도 접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자리보전을 위해 허수아비도 불사하는 사람들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신 수석이 뜻을 굽히지 않자 청와대 기류도 싸늘하게 바뀌고 있다고 한다.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신 수석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한 점은 이미 청와대도 인정한 터이다.

그렇다면 그의 의사를 존중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민정수석은 인사에 간여할 권한이 없는데도 몽니를 부린다거나 역시나 초록은 동색이었다는 둥의 2차 모욕은 없었으면 좋겠다.

신 수석이 아니라 청와대의 품위를 떨어트리게 될 테니 말이다. 그보다는 오랜 지기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불안한 리더십을 돌아보는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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