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의 성악설처럼…
순자의 성악설처럼…
  • 오영근 기자
  • 승인 2021.02.1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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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오영근 선임기자
오영근 선임기자

 

`부모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부모 다음 자식이라지만 죽음에는 그 순서가 들어맞질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

그래도 자식 죽음 앞세워가며 오래 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모든 죽음은 다 슬프다지만 자식 죽음 앞세운 부모의 슬픔을 어디에다 견주랴.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가 슬픔을 토하 것을 곡자(哭子)라 한다.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시대 비운의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초희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다. 강원도 강릉에는 27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조선시대 비운의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의 동상이 있다. 그 동상 앞에 5언고시가 새겨져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곡자시다. 20대의 젊은 엄마인 허난설헌이 두 해에 걸쳐 딸과 아들을 차례로 잃은 비통함을 절절히 토로한 한시다. “지난해는 귀여운 딸을 잃었는데 /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을 앞세웠구나”로 시작되는 이 시는 마지막 시구에서 처절한 슬픔이 절정을 이룬다.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하나 / 어찌 장성하기를. 바랄 수 있으리오 /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며 /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황대사(黃臺詞)는 측천무후의 권력욕에 죽임을 당한 중국 당나라 고종의 태자들을 참외에 빗대 지은 노래다.

뱃속에 아이를 잉태한 허난설헌은 중국 고사를 읊조리며 자식 잃은 비통함에 숨죽여 운다고 썼다. 명문장이다.

딸과 아들을 잃은 설움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 운명까지 불안해하는 모정의 심리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곡자시의 사례는 충북에서도 찾을 수 있다. 향수의 시인, 옥천 출신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이란 시다.

대학 수능 국어문제로도 곧잘 출제되기도 한다. 정지용 시인의 곡자 슬픔을 엿보자.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중략…/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 아아, 늬는 산(山) 새처럼 날아갔구나!” 막내이자 첫 딸을 폐렴으로 잃고 난 뒤 처참한 슬픔을 유리창에 낀 차디찬 성에를 지우며 토로하고 있다. 잠시 머물다가 훌쩍 떠나버린 어린 자식에 대한 안타까운 부정(父情)을 엿볼 수 있다.

지난 설날부터 기가 막힌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전북 익산의 부부 아동학대 사망과 경북 구미 3살 여아 방치 사망사건이다. 익산 부부는 생후 2주 된 아들을 7차례나 폭행했다. 분유를 먹고 토했다며 갓 태어난 신생아를 침대에 내던졌다. 아이는 머리를 벽에 부딪혀 심하게 다쳤지만 부모는 아이를 병원조차 데려가지 않았다. 되레 인터넷에서 `멍 빨리 없애는 방법'을 검색했다니 이들이 과연 친부모인지 말문이 막힌다.

경북 구미의 빈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두 살 여아의 친모는 인면수심 그 자체다.

아래층에 살던 외조부에게 발견된 아이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고 한다. 친모는 미성년자일 때 아이를 낳았다. 친부는 오래전 집을 나가 연락을 끊었다. 지난해 8월 두 살 된 아이를 빈집에 버린 채 이사를 했다.`아빠, 엄마'겨우 두 마디 말문이나 열었을 법한 두 살 아기는 그렇게 버림을 받았고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 남편 아이라 보기 싫었다.” 경찰이 전한 친모의 비정한 진술이다. 친모는 다른 남성과 재혼을 했고 다시 아이도 낳았다. 그러곤 최근까지 숨진 아이의 양육·아동수당 20만원씩을 매달 받아왔다고 한다. 죽은 자식 가슴에 묻는다는데. 자식 버린 부모에 어미는 돈만 챙겼으니,`짐승보다 못하다'는 말로도 성이 차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모두 선(善)하게 태어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순자의 성악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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