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세발(趙州洗鉢) 5
조주세발(趙州洗鉢) 5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1.02.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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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 속 거미집에선

물고기가 차를 달이네



반갑습니다.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마음이 창조하는 세상을 은유로 상징화한 선시의 세계는 우리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느끼게 해줍니다. 조주 선사의 눈으로 본다면 나라고 하는 것은 도구에 불과한 몸도 아니고, 이 몸을 나라고 인식하는 마음도 아니지요. 조주 선사에게 있어서 나는 순수한 의식 자체이면서 생명이고 사랑이라는 통찰이며 깨우침(自覺:enlightenment) 그 자체입니다.

이것 또한 이름을 붙이자면 순수의식이니 깨우침이라 할 수 있는데 부처란 내가 인식하는 모든 것에 대해 순수한 의식이며 모든 것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이면서 또한 그 모든 것을 창조하는 이로써 바라보는 세계로 깨우침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趙州洗鉢) 5에서는 조주 선사께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수행자에게 설하신 선문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수행자가 조주 선사께 예를 갖추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묻자 선사께서는 “그대는 아침에 공양을 하셨는가?”라고 되물었고 그 스님이 “네 먹었습니다.”라고 하자 선사께서는 “그럼 발우를 씻게나!”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답한 조주 선사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대는 아침 죽을 먹는 자 또는 발우를 씻어야 할 그 사람인 몸과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수행자로 하여금 인식하고 동시에 행위를 하게 하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라고 말하는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몸이란 인식과 행위를 하기 위한 의식의 도구일 뿐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자동차가 주인인지 운전자가 주인인지 누가 주인인지를 성찰할 수 있다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적 세계 즉 개체의식의 세계에서는 자유와 행복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있다 해도 오직 일시적이고 조건일 뿐이고 여기에는 나라는 거짓 관념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라고 하는 것은 바야흐로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사라지게 되면 세계도 함께 사라지고 전체와 하나가 된 순수한 의식 그 자체만 남게 될 것입니다.

즉 인식이 없는 존재는 있을 수 없고 존재가 없는 인식 또한 없기 때문인 것으로 바로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이 실재인 것이고, 나라고 하는 것을 내가 인식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차나 한 잔 하시고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趙州洗鉢) 6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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