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휴대폰의 기적
어느 휴대폰의 기적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1.02.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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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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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살아있었다. 그러는 연유는 도저히 불가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날 화장실에서 갑자기 풍덩 하는 물소리가 났다. 영찬은 순간 긴장의 끈이 뇌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왠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처음엔 옆에서 일어난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가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충격이었다. 다름 아닌 그 물소리의 원인은 지갑도 열쇠도 아닌 휴대폰이었다. 왼쪽 앞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이 헐렁한 주머니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와 빠져 버린 것이었다. 설마 앞주머니에서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 순간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지체할 겨를도 없이 휴대폰을 건져 내었다. 다행히 물은 깨끗했다. 급한 마음에 곧바로 서비스센터로 달려가 담당기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그가 점검에 들어가는 동안 영찬은 조바심 속에서 이상이 없기만을 바랐다. 잠시 후 그가 영찬을 찾았다. 돌연 그의 어두운 표정에서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기대했던 것이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그는 영찬에게 무거운 말투로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요즘 제품은 방수를 운운하지만 영찬의 휴대폰은 시간이 좀 지난 탓에 어려움이 있었다. 영찬은 어찌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저장된 것들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집으로 돌아온 영찬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휴대폰을 살려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어쩌면 행여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찬의 바램이었다. 밤늦도록 휴대폰으로 인한 방황은 혹시나 하는 기적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기적은 있다고 믿고 싶었다. 또한 그 기적이 비록 불분명하지만 영찬은 자신의 간절한 기대를 외면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긴 기적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불가사의할 것 같지만 어찌 보면 희미한 가능성에 대한 강한 희망이 기적을 엿볼 수 있어서였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시간 사이로 막연한 착각과 떠도는 말들이 얽혀 공연한 추측이 난무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시 한번 서비스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영찬의 부탁대로 재점검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동안 영찬의 갈등은 절망과 희망이 부딪치며 오갔다. 얼마 후 그가 영찬을 불렀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휴대폰 기능이 복구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랬던 휴대폰이 하룻밤 사이에 기적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동안 영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고민들이 한꺼번에 말끔히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마치 먹구름 속을 소나기가 한바탕 휘젓고 간 하늘에 맑은 햇살이 드리워진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건 분명 영찬에게 기적이었다.

기적은 저마다 경우와 모양새는 다르겠지만 그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절실한가에 따라 그 기적의 효용적 가치가 주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또한 기적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일이 단지 희박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거기에 희망이란 의미를 부여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코로나와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코로나를 이기기 위해서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적은 희망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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