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그립다
낯설고 그립다
  •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장학사
  • 승인 2021.02.1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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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장학사
추주연 청주교육지원청 장학사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다. 동지섣달에 태어나도 설을 쇠면 1살 늘어나게 되니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살'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설이 새해 첫 달의 첫날, 그래서 아직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 등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설의 풍경은 어느 때보다 낯설었다. 두 손 한 아름 선물꾸러미를 들고 찾아오는 타지역 친척도 드물고, 고속도로를 가득 메우던 차량의 행렬도 없었다. 차례를 온라인으로 지내고, 사거리에는 `귀향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 대신 `이번 설에는 오지 마라 계좌번호 보내마'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형제들끼리 모이는 까닭에 설 명절을 두고 가족회의가 열렸다. 형님댁은 원래 식구만으로 다섯 명이니 예전처럼 모여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 결국 설날 아침 일찍 남편이 대표로 잠시 인사만 가기로 했다. 다녀온 남편의 손에는 함께 하지 못한 아침 식사거리가 바리바리 들려 있다.

방금 손으로 어슷썰어 넣은 듯 투명 봉투 안쪽에 뽀얗게 김이 서린 떡국떡, 얇게 빚은 만두피에 한 해 푹 익은 김장김치의 붉은 물이 배어 있는 손만두는 김치통 한가득 이다. 떡만둣국 재료 말고도 이것저것 밑반찬이 각양각색 통에 꾹꾹 눌러 담겨 있는 모양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마음 그대로다. 둘러앉아 먹었으면 한 그릇씩 더 먹었을 떡만둣국인데 남편과 둘이 먹으려니 영 그 맛이 나질 않는다.

이번 설 우리 집에 또 하나 사라진 것은 설빔이다. 정신없이 바쁜 연말을 보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설 무렵이면 가족들 옷 한 벌씩 사는 것이 쏠쏠한 재미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새해맞이 옷이라도 한 벌 사볼까 싶던 차에 우연찮게 툰베리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청소년 기후운동가로 활동 중인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얼마 전 18살 생일을 맞이하고 성인이 됐다. 툰베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새 옷을 사지 않겠다.' 고 선언했고 이미 몇 해 전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있다. “옷을 가진 이들에게 더는 필요하지 않은 옷이 있는지, 옷을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볼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옷을 살 필요가 없으니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툰베리의 말이다.

의류산업은 항공산업 다음으로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다. 의류산업의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전체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 의류브랜드는 2000년에 비해 2020년 2배로 늘었고, 섬유 소비량은 2030년 현재 사용량의 2배가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며칠 전 옷장을 열어보고 어째 입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열어 본 옷장은 옷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어릴 적엔 계절이 바뀌거나 설이나 되어야 새 옷 구경을 했다. 그때와 사뭇 다른 시절임에도 설빔 생각에 들떠 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올봄엔 한참을 입지 않고 옷장 구석에 버려두었던 옷들을 손질해 입어 볼까 한다.

설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풍경이 퍽 낯선 요즘이다. 낯선 만큼 그립다.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따뜻했던 건강한 시절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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