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테의 시간
라테의 시간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21.02.16 1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잿빛 하늘이 낮게 내려앉았다. 커피향도 낮게 번진다. 스산한 날에는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이 커피다. 고운향기를 잊은 나이인데도 유독 진한 커피향에 집착한다.

강한 향과 진한 맛, 농도가 높아서 쓴맛도 강하게 느껴지는 에스프레소에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카페만 보이면 커피를 사서 마셨다. 미니어처 컵인가 싶을 정도로 무척 작고 일반 커피잔보다 두꺼운 데미타세에 담아주는 에스프레소는 환상의 맛이었다. 진한 커피가 몸에 무리를 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종일 커피마시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에 진한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듬뿍 넣는 에스프레소 라떼를 마실 때는 부드러운 것에 호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나 태생이 변하지 않듯이 강한 맛에 길들여진 입맛이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안과 검사를 받으려고 버스를 탔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버스 안은 승객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간신히 손잡이를 잡았다. 옆에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노인이 중심잡기가 힘든지 자꾸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청년이 힐끔 쳐다보다 핸드폰에 눈길을 둔다. 기다려도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보이지 않는다. 모른척 해야지 하면서도 눈에 거슬린다. 말을 참으려고 마른침을 넘겨보나 자꾸 입술이 들썩인다. 결국, 미안하지만 자리 좀 양보하면 안 되겠느냐 물었다. 청년은 전혀 그럴 의사가 없다는 듯이 들은척을 하지 않는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자가 일어나 노인을 앉힌다. 나 때는 노인이 버스에 올라서면 금방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했는데 젊은이의 태도에 쓴말이 자꾸 입술을 비집는다. 일어서지 않는 그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헤아리지 않은 걸 후회할 거면서 참지 못하고 예의가 없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나도 꼰대가 되었나보다.

처음 직장에서 공문서 작성하는 게 서툴렀던 나를 보면서 하던 대선배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 때는 말이야, 그렇게 버버거리지 않았어. 선배 잘 만나 편하게 배우는 줄 알아.” 기회가 되면 수시로 들어야 했던 `나때는 말이야'는 나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습관은 아랫사람들을 짜증나게 만들고 멀어지게 했다. 헌데 이젠 내가 그 말을 쉽게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애의 집착에 빠져 단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본인이 하는 것은 모두 옳고 타인이 하는 것은 눈에 차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내 기준에 맞지 않으니 잔소리가 늘어간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으면 언짢아지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고집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나에게 누군가 부드러운 감성을 듬뿍 섞어주면 라떼처럼 순해질까.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탔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하다. 차창에 부딪힌 눈이 뒤로 밀려간다. 여행지에서 마셨던 에스프레소가 간절하게 생각나는 걸 보면 순해지기는 틀린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