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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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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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영 시장에 대한 이철수 회장의 기대
김 승 환 <충북민교협 회장>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고사가 있다. 직역하면 인물, 말, 글씨, 판단력이다. 인물이 좋고 언변이 좋으며, 글씨를 잘 쓰고 시화(詩畵)에 능할 뿐 아니라 정확한 판단력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는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 고사다.

나는 엄태영 제천시장께서 신언서판이라는 이 고사에 딱 어울린다고 믿는다. 그런데 최근 그 좋던 엄 시장의 표정에 심각한 금이 가고 신중하고 겸양했던 언동에 수상쩍은 과감성이 보인다. 그뿐인가. 빛나던 지혜도 무디어지는 것 같으며, 당연히 판단력에 이상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무엇일까

2007년 2월 2일이었다. 평생의 지기(知己) 이철수 회장이 갑자기 제천에 일이 생겼으니 청주 일을 좀 챙겨달라는 단호함 끝에, 왜 그런가 하고 묻게 되었다. 황급한 전화 건너의 목소리는 '엄태영 시장과 콘도'를 끝으로 끊어져 버렸다. 콘도라면 콘도미니엄, 즉 위락시설로 숙식이 가능한 숙박장소일텐데, 이철수 회장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추측컨대, 이에스리조트에서 두 분이 만나서 훌륭한 제천을 만들기 위해서 의기투합했다는 뜻일 것이고, 이미 '제천국제음악영화제'나 '제천 기적의 도서관' 그리고 '제천의병제' 등으로 좋은 협조의 전범을 보였으니, 이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무슨 기획이 시작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난해 종로 어디선가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잔잔한 성공 사례로, 덩달아 충북에 산다는 이유로 나까지 좋은 소리를 듣던 바여서 나는 내심 기대가 컸다.

그로부터 두어 달 후, 이철수 회장은 말하기를 그날 또한 청주에 못 가겠다는 것이다. 그날은 재판이 있는데 역시 콘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 상상력은 멈추었다.

콘도를 둘러싸고 재판을 한다면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나쁜 것일 터이고, 그래서 일도 못할 상황이라면 제법 심각한 것이 분명했다. 급기야 나는 수염쟁이 화가 이홍원의 철마(鐵馬)를 몰아 백운의 뒷산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늘을 보고 바위를 타며 호탕의 말을 몰아 두개의 산을 넘은 후, 어스름 저녁에 철수 회장집에 이르렀다.

원래 소탈한 그였는데 그날따라 분기가 탱천했다. "엄 시장께서 그만하면 좋은 목민관이 아니냐"는 내 말을 팽개치는 철수 회장의 기세는 사나웠다. 자신도 그렇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엄 시장의 머리 속에는 온통 무엇을 개발하고, 어떻게 하든 인구를 늘리며, 강한 제천을 만드는 등, 현대적이고 발전적인 것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뒷산에 콘도와 의학센터를 지어 산악형 휴양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엄태영 시장의 성장개발주의에 그만 이철수 회장이 탱천분기한 것이다. 잇는 말은 성장도 좋고 발전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지 않겠냐면서 결전의 일수불퇴가 삼엄했다.

수염쟁이 화가는 수염만 쓸고 나는 멋쩍어 차만 마시는데, '흙에 눈이 들어가도' 백운 평동 뒷산에 콘도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후를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

콘도를 지어서 제천을 발전시키고 또 관광수입도 높여보겠다는 엄태영 시장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과 자연이니 현재의 현금(現金)보다 후세들의 자산을 축적시키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이철수 회장의 충돌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판화가 이철수 회장은 말을 잇는다. 엄태영 시장은 성장발전경쟁이라는 여우에 홀렸다는 것이다.

이철수 회장에 의하면 무조건 성장하고 무조건 발전함으로써 경쟁에서 지지 않아야 한다는 이 위험한 생각이 엄태영 시장의 판단력을 쇠퇴시킨 주범이었다.

발전을 하되 환경을 지키고, 성장을 하되 인간을 지키는 것이어야지 인간과 환경을 파괴하는 발전은 결국 발전도 정지되고 인간도 파괴된다는 너무나도 거룩한 설교(說敎)가 이어졌다. 문득 드는 생각, 청목회를 이끄는 그 냉철한 판단의 엄태영 시장이 이럴진대 다른 자치단체장은 또 어떨 것인가

이철수 회장은 엄 시장을 고발했지만 그 고발은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기대를 가진 긍정적 고발이다. 그러니까 이철수 회장은 엄 시장의 동지로서, 엄 시장을 괴롭히는 수많은 압력들 가령 성장, 발전, 경쟁, 첨단, 대규모, 세계화, 인구증가와 같은 어휘들과 투쟁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철수 회장은 엄태영 시장을 대신하여 신자유주의 망령들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찻잔에 연둣빛 차를 따르면서 철수 회장의 한탄은 이어졌지만 허이연 웃음을 짓던 그는 '그래도 엄태영 시장께서 올바른 판단으로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라며 먼 산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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