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바람소리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1.02.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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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바람이 보인다. 나무가 흔들리고 벽에 붙은 간판이 덩달아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요란하다.

두려운 마음에 모든 창문을 닫아야만 한다. 작은 틈새로 윙윙거리는 모습이란 잔뜩 성을 품고서 보란 듯이 바깥 풍경을 끌어들이고 있다. 창밖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바람이 몰아주는 데로 굴러다니는 중이다.

커다란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꺾이고 뽑힐 것만 같던 나무들은 몸을 곧추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잔하다. 세상은 다시 평온이 찾아들었다.

원치 않게 많은 피해를 남기는 일을 당한 처지에 이르러서도 모두들 회복의 길로 가느라 열심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든 모습일 때는 사람과 바람의 한 판 승부가 끝난 광경 같다.

바람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강도가 여러 겹으로 되어 있었고 귀담아듣노라면 마치 심장에 박히듯 예리한 형체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어릴 때는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웠었다. 지금은 바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잘못 했던 일들을 떠올리는 굉음으로 들려온다.

인생의 깊어가는 가을을 걷다가 귀에 들려온 소리, 바람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나를 깨우고 있었다.

바람의 변화는 여러 가지를 보여준다. 지난날 소리 없이 다가와서 귓불을 간질일 때는 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다.

물기든 빨래를 햇볕에 말리면서도 바람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문득 다가와서 바람소리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한다. 여러 아쉬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는 바람이 마음을 흔들 때마다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대해 더듬는 여유를 갖는다.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바람소리와 촉감이 새롭다. 나도 모르게 쌓아두었던 그릇된 상념들을 이제 날려버릴 차례이다. 혹여 누군가와 불편했던 일들과 꼭꼭 여미었던 작은 욕심까지도 바람이 전하는 소리에 지우려 한다. 창을 흔드는 소리, 나무를 거세게 흔드는 모습으로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바람의 속성에서 정화의 길을 찾는다. 수많은 갈래의 길을 열어두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찾아드는 기이함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일도 괜찮지 싶다.

바람의 모습과 소리가 어디 이뿐이랴. 돌아보니 그동안 내게도 많은 일들이 지나쳐 갔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많았지만 원치 않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다.

그 속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남편의 병원 신세였다. 보이지 않는 거센 바람에 맞서느라 온 가족이 한마음이어야 했다. 확실한 몸짓으로 가깝게 다가왔다가 지금은 주변에서 잠잠해져 있는 상태이니 항상 조심스러운 날들이다.

바람의 모형은 없다. 지나간 자리를 보고서 살아 있는 존재로 안다. 원치 않게 마주친다 해도 피할 수 없다.

기후의 변화에 의한 것이지만 한순간 내 귀에 꽂힌 광폭의 소리는 많은 것을 떠올리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가슴에 불어온 바람은 색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굳어 있던 오해를 녹이고 화해와 포용을 돋우는 외침으로 들릴 뿐이었다.

주변을 둘러본다.

시대를 깨우는 소리, 마음의 갈피를 찾는 소리가 어디 바람소리 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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