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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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2.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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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따뜻한 커피를 옆에 놓고, 소리가 방해받지 않도록 과자도 부드러운 에이스로 준비했다. 이제 오래된 dvd 플레이어를 작동만 시키면 된다. 요즘처럼 영화관 가기가 두려운 때는 이렇게 집에서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도 영화를 좋아하는 나만의 자구책이다. 오래전에 구입해 논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보았다. 아마도 책을 읽고 영화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구입을 해서 보았을 것이다. 좋은 음악은 또 들어도 좋듯이 좋은 영화를 만나면 몇 번을 반복해서 보는 게 나의 버릇이기도 하다.

오늘 안방극장의 영화는 죽음을 소재로 다룬 `축제'이다. 소설은 고(故) 이청준 작가가 썼으며 영화는 임권택 감독이 만들었다. 대부분의 경우 소설의 영화화라든가 영화의 소설화 과정은 선후관계가 명확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선후가 명확한 경우 나중에 창작되는 것은 단순히 앞선 창작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재구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청준과 임권택의 경우 소설의 창작과 영화촬영이 동시에 진행되었고, 둘은 소통을 통해 `동시창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활동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어서일까?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소설 속의 인물들과 사건들을 비교하게 되었다. 소설에 비해 영화의 한계는 인물의 심리묘사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작가는 전지적 능력으로 준섭의 내면을 담담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감독이 직접적으로 영화에 개입할 수 없으니 영상이나 영화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그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드러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소설과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준섭이 쓴 동화의 존재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소설에는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동화의 삽입이 영화에서는 준섭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서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축제'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중 내가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은 `용순'이었다. 사실 소설과 영화에서 죽음, 장례식을 축제로 만든 것은 `용순'이라는 인물의 역할이 컸다. `용순'은 죽음을 맞은 인물의 손녀이다. `용순'은 어린 시절 계모와 이복형제들 사이에서 힘겹게 살다 외지로 나가 떠돌며 살았다. 그런데 자신을 예뻐해 주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집을 찾는다. 같은 인물임에도 소설과 영화에서 `용순'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은 차이를 보였다. 소설의 `용순'은 단지 장례식을 망치는 인물로밖에는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가족의 화합을 이루는 중심인물로 재탄생 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당사자 `어머니'에 대한 의문이다. 두 작가의 어머님은 같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두 작품은 비슷한 사건과 내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 `축제'는 이청준씨 어머님의 실제 장례식에 근접한 이미지였다고 한다. 그러니 작가는 그다지 밝은 느낌으로 써 내려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보다는 밝고 실제 `축제'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이것은 감독 임권택이 자신의 어머님께 바치고 싶은 장례식의 모습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이러한 이청준 작가와 임권택 감독의 동기의 차이는 영화와 소설에서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축제》라는 두 작품이 맥락을 같이하면서도 서로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작가 각자의 개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참 느긋한 주말의 저녁이다. 한 주의 마무리를 안방극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어둠이 스멀스멀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다음 주말에는 안방극장에서 또 어떤 영화를 볼까 즐거운 고민을 해야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코로나가 우리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뀐 환경 속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 것이 힘든 이 시간을 헤쳐나가는 지혜로운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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