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절구
돌절구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1.02.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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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우편물이 쌓였다. 집으로 오르는 계단 옆 항아리처럼 생긴 우직한 절구통이 우리 집 우편함이다.

징으로 쪼아 만든 돌절구는 모서리가 떨어지고 흙먼지가 쌓여 본연의 소임을 잃은 지 오래다. 지금은 각종 우편물, 주문한 책, 택배 등을 보관하며 새로운 임무로 여전히 바쁘다.

돌절구에는 시할머니의 손을 거쳐 어머님의 부지런했던 시간, 나의 서툰 절구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돌절구에 담긴 지난 풍경을 들추고 귀 기울이면 조근조근 옛 이야기가 들려오곤 한다.

부엌 뒷문 봉당 위에 움푹 파인 돌절구는 거친 보리쌀을 닦는 데 그만이었다. 시부모님은 보리밥을 유난히 좋아했다.

끼니때마다 열 명이 넘는 식구들의 밥을 짓기 위해 돌절구를 사용했다. 절구질의 횟수가 더할수록 보리쌀은 서로 부대끼고 닦여 밥맛이 부드러웠다. 삶을 때 팥이라도 한 움큼 넣으면 구수한 밥맛이 일품이었다.

보리쌀을 절구에 찧기 시작하면 아버님은 밥솥에 불 넣을 준비를 했다. 연통을 풍구에 연결하여 아궁이 깊숙이 넣고 왕겨를 한 삼태기 담아온다. 절구에서 꺼낸 보리쌀을 씻어 솥에 안치면 아버님의 풍구가 돌기 시작한다. 왕겨를 흩뿌리는 노련하고 빠른 손놀림에 금세 불이 발갛게 피어오른다. 솥에서 김이 솟고 끓기 시작하면 보리쌀 절반을 건져 소쿠리에 담아 보관한다. 그동안 아버님은 찬에 들어갈 마늘 한 통, 파 두 뿌리를 다듬어 내게 주신다. 보리쌀 위로 쌀을 적당히 섞어 솥뚜껑을 덮으면 다시 불씨를 살린다. 일이 서툰 며느리를 살피는 아버님의 사랑은 아궁이가 개조되던 해까지 계속되었다.

종가를 이끄시는 어머님의 마음만큼이나 절구도 그 품이 넓었다. 마르거나 젖은 것 무엇 하나 가리는 것이 없었다.

메주와 청국장이 절구를 거쳐 모양이 만들어졌고 녹두와 동부가 떡고물과 지짐이로 상에 올랐다. 솜씨 좋은 어머님은 제사에 올릴 음식을 만들 때 가장 빛났다.

뿐만 아니라 된장과 고추장은 항아리마다 가득해 친척이나 이웃과 나누었다.

내 집을 찾은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는 일이 없는 어머니께 나는 한때 투정도 했다.

하지만 그 깊은 뜻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머님이 우리 곁을 떠나시고 빈 항아리가 늘면서 친척들의 출입도 뜸해졌기 때문이다.

서툰 절구질에 곡식이 튀듯 고단했던 일상은 내 마음을 수시로 튀게 했다.

꿈꾸던 결혼생활이 풀리지 않고 실타래처럼 엉킬 때 야속한 마음까지 함께 찧었다. 밥벌이를 위해 야심차게 시작한 남편의 사업이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빚만 안은 채 접어야 했다.

의욕을 잃은 남편은 컴컴한 터널 속에 스스로 갇혔고 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휴일 없는 힘든 날을 보내기도 했다. 삶의 절구질이 능숙해지기까지 무던히 긴 시간이 걸렸다.

돌절구와 함께한 44년의 시간이 지났다. 요즘은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며 작은 것도 이웃과 나누던 그때가 자주 생각난다.

돌절구는 오늘도 집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거친 보리쌀을 뽀얗게 닦아주던 넉넉한 품에 이제는 새 소식과 함께 그리움과 사랑을 담고 나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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