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기, 내 동생
레기, 내 동생
  • 민은숙 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 승인 2021.02.0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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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민은숙 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민은숙 청주 동주초 사서교사

 

나에겐 동생 둘이 있다. 두 동생은 성격이 너무 다르다. 그리고 두 살 터울이다 보니 집이 조용한 적이 없었다. 치고받고 울고불고, 난장판이 따로 없던 것 같다. 정말 드물게 사이가 너무 좋아서 서로가 없으면 못 산다는 집의 형제, 자매, 남매를 보면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같은 집에 살면서 어떻게 안 싸우고 살 수 있나 싶다. 어릴 적 제일 부러웠던 것이 외동딸인 친구들이었다. 언니나 오빠가 있으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도 솔직히 외동이 제일 부럽긴 하다.

형제 관계를 다룬 동화를 종종 읽어 본다.

아무래도 나는 맏이다 보니 동생 입장에서 쓴 동화보다 맏이 입장에서 쓴 동화가 격하게 공감이 간다. 둘째는 사이에 끼인 입장이라 힘들고 서럽다고 한다. 막내는 위의 둘 때문에 힘든데 부모님이 그걸 잘 몰라준다고 한다. 맏이 입장에서는 그냥 웃을 뿐이다. 이미 득도의 경지에 올랐지 싶다.

도서 `레기, 내 동생'(최도영 글·이은지 그림·비룡소)도 그런 자매 관계에 대한 책이다. 책 표지를 보자. 한가운데에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그려져 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 뒤에는 자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부모는 멀리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가 싶고, 주인공인 리지는 그런 쓰레기봉투를 보며 씨익 웃고 있다.

이야기는 동생 레미가 엄마가 아끼고 아끼는 그릇을 깬 것으로 시작된다. 얄미운 동생 레미가 혼날 거라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돌아온 엄마는 일단 나를 쳐다본다. 억울하지만, 얼른 난 아니라고 말한다. 레미는 자기 잘못도 모르고 나를 원망스레 쳐다본다. 실수로 그랬다며 울먹이는 레미. 엄마는 그런 레미한테 넘어가서 화도 안 내고 심각하게 깨진 거 누가 치웠냐고 한다. 레미는 거기에 피가 배인 손가락을 내밀며 울먹인다. 엄마는 손가락을 호호 불며 아홉 살 레미를 달랜다. 오히려 언니인 내가 그릇을 안 치웠다고 혼났다. 억울하고 외로운 마음에 수첩을 꺼내 동생 레미의 이름을 적고, 지우개로 지워 `레기'글자로 만들어 본다. 거기에 `쓰'를 덧붙여 써 본다. 처음 하는 일이 아니다. 레미에게 당하는 날이면 이렇게 마음을 푼다. 연필로 꾹꾹 `내 동생 쓰레기'라고 쓰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러고 잠이 들었는데 동생 레미가 쓰레기봉투가 되었다. 쓰레기봉투가 된 레미는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쓰레기봉투가 된 동생을 다시 사람으로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와. 정말 다섯 쪽 읽고 그 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다 읽었다. 아마 전국에 계신 맏이 여러분은 리지와 한마음이 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그냥 재미있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이지만, 형제관계로 고민이 많은 엄마에게 반대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첫째인 나는 너무 공감 이입이 되어서 즐겁게 읽었는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첫째들 사이에서 돌려 읽기가 된 책이다. 둘째 이하들은 “우리 언니, 오빠, 형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투덜대던가, 레미에게 이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는 아이 입장에서, 아이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리지에게 위로받는 책이지 싶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는데 가볍게 숨 돌릴 겸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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