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멀리멀리
하늘 높이, 멀리멀리
  • 박소연 충북도문화재硏 교육활용 팀장
  • 승인 2021.02.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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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박소연 충북도문화재硏 교육활용 팀장
박소연 충북도문화재硏 교육활용 팀장

 

명절이면 평소 자주 보지 못하던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것이 당연했던 우리에게 코로나19는 또 다른 변화를 안겨주었다.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마저도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말이 무색하도록 여느 때보다 조촐한 설을 보내야 할듯하니 말이다.

매년 설이면 민속촌이나 박물관 등에서는 넓은 터에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전통놀이를 준비해두곤 하였다.

과거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놀이가 우리 세시풍속의 하나로 다양한 의례와 더불어 행해져 왔다면, 점차 사회가 다각화됨에 따라 세시풍속이라는 말조차 어색하게 간략화되며 이제는 그저 전통놀이의 개념으로만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놀이 중 연초에 즐기는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지신밟기 등이 있는데, 특히 연날리기는 우리의 오랜 전통 기예 중 하나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가 절정이었다.

이 시기에 주로 연날리기가 행해졌던 이유는 그 해의 온갖 재앙을 연에 실어 날려 보내고 복을 맞아들인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연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연날리기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 권 41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647년에 선덕여왕이 죽고 진덕여왕이 즉위하자 진덕여왕을 반대하는 비담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이 반란군 진압을 맡게 되었다.

한참 동안 반란군과 김유신군이 대치 중인 상황이 이어지던 어느 날 성 안으로 큰 별똥별이 떨어졌다. 별똥별은 흉한 일이 일어날 징조였기에 이를 본 왕과 군사들이 두려워하여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이에 김유신이 꾀를 내어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커다란 연에 매달아 하늘로 띄웠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어제저녁에 떨어진 별이 하늘로 다시 올라갔으니 왕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소문을 내어 군사들이 사기를 드높여 싸움에서 이겼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보다 앞선 5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고구려 장천1호분 벽화에는 새 모양의 연을 날리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남아 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꽤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고려시대에는 최영 장군이 제주도를 정벌할 때 연을 이용하기도 했으며 조선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 장군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연을 사용한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군사적 목적 이외에도 일상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심지어 임금님조차도 놀이의 하나로 연날리기를 즐겼다는 기록도 다수 남아있다.

우리가 삼국시대 이래로 즐겨왔던 연날리기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2년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어 왔는데 2015년 이미 누구나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전승 활동이 이루어지며 대중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문화재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전해지는 특징이 있는 무형문화재는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많이 찾고 즐긴다면 특별히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하지 않더라도 그 전통이 자연스럽게 현재까지 이르게 된다는 말이니, 더 낙관적인 뜻이 아닐까.

이번 설에는 가족들과 함께 연을 한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한바탕 연을 날리며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물들인 코로나19를 실어 멀리 떠나보내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면 금상첨화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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