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지킨 사람들, 병역명문가
대한민국을 지킨 사람들, 병역명문가
  • 여신구 병역명문가·공무원
  • 승인 2021.02.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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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구 병역명문가·공무원
여신구 병역명문가·공무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강점기 시대의 민족 현실을 `빼앗긴 들'로 비유한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이 지은 시다.

이 비장한 첫 구절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되찾고 싶은 그 절실함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100년이 지난 지금 저마다 생각하는 봄의 모습은 다를 테지만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세계가 주목하는 K-방역의 주인공으로, OECD 회원국가 중 눈부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국제적 위상을 떨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탈과 6·25전쟁이라는 시련을 딛고 세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나의 가족·이웃·나라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들의 정신을 본받고 대를 이어 나라사랑의 가치를 실천해온 가문이 있다.

바로 병역명문가다.

병무청은 3대에 걸쳐 모든 남성이 병역 의무를 현역 등으로 마친 가문을 병역명문가로 선정해 2004년부터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을 시작해 작년까지 전국 6395가문이 선정됐다.

우리 여운택 가문 역시 3대 가족 모두가 현역으로 성실히 복무를 마쳤기에 2020년 병역명문가로 선정, 영예롭게 국방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우리 가문은 1대 부친(여운택), 2대 우리 형제들 3명, 3대 아들과 조카들 4명, 총 8명이 182개월의 복무를 마쳤다.

우리 가문이 대를 이어 명예롭고 당당하게 병역을 이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지역 향토방위대 청년단장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는 가족과 이웃,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27세의 나이에 자원입대했다.

낙동강방어선에 배치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아군의 공세로 평안도 운산까지 진격하던 중 1952년 2월 중공군에 잡혀 평안북도 벽동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혹독한 수용생활을 하시며 꼭 살아 돌아가리라 다짐했다.

휴전 이후 남북한 포로교환으로 3년 7개월 만에 구사일생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줄만 알았던 남동생(여운석 이병)이 군에 입대해 2개월 만에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고 한다.

전쟁으로 몸을 다치고, 사랑하는 어린 동생까지 잃었지만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도 주민들이 가난한 시골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농작물 재배방법을 보급하고, 마을 앞 금강에 다리를 설치하기 위한 선도적 역할로 당시 내무부장관과 군수 감사장을 받았다.

평생을 이웃과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며 지금 이 땅의 평화는 아버지와 같은 평범한 영웅들의 노력이 일구어낸 것임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됐다.

이처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숭고하고 거룩한 뜻이 나와 내 자식들에게 이어져 병역명문가로 선정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 가문은 이 자랑스러운 마음을 원동력 삼아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겠다.

훗날 본인의 나라사랑 정신이 후손에게 이어져 새로운 병역명문가로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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