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벨머 - 크로테스크바디
한스벨머 - 크로테스크바디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21.02.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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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신이 자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했을 때부터 인간은 숙명적으로 자신을 닮은 그 무언가를 창조해내도록 운명 지워졌던 것일까? 인류의 역사 이래 수많은 인간을 닮은 형상들이 존재해왔다. 그것이 조각상이든 인형이든 유사인간형인 기이한 존재들이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창조되어왔다. 이들은 때로는 주술적인 용도로, 때로는 사랑의 대상으로, 때로는 죽음을 환기시키는 독특한 심리적 효과를 창출하며 인간의 욕망을 구현시키는 대리물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예술작품에서도 인형은 다양한 소재로서 그 기능을 해왔다. 독일 출신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한스벨머는 여성의 형상을 한 인형의 신체를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신체에 대한 정상화된 시선을 거두고 대신 극단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벨머의 인형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극도로 과장되고 비정상적으로 재구성된 신체는 그로테스크 바디가 가지는 열리고 튀어나오고 확장되고 비밀스러운 특성을 지닌다. 절단된 부위들이 다른 기관, 다른 세상과 들과 결합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진동시킨다.

벨머에게 있어 사진이라는 매체는 그의 예술관을 만족시키는 가장 적합한 매체였다. 그는 인형의 수족을 뜯어 맞추고, 옷을 입히거나 자세를 조작한다. 카메라 뷰파인더 속에 포착된 인형은 완전히 수동적인 존재로서 그의 의도대로 움직이며, 그는 사진을 통해 마음대로 형태를 재구성하는 전능한 신이 된다. 샴쌍둥이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반복되고 기형적인 혼성의 더블이미지가 그대로 드러난 자웅동체의 이미지 등은 벨머의 도착적인 환상이다. 벨머는 첫 번째 아내와 쌍둥이 딸을 잃고, 이후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으며 드라마틱하고 불운한 개인사를 지니게 된다. 또한 정치·문화적으로 `파시즘'이라는 시대의 트라우마로 인해 폭력성과 죽음 충동이 그의 작품 세계에 마르지 않는 도착적 근원을 제공한다.

벨머는 작품에 도착적 주제와 양식을 다양하게 덧입힘으로써 인형을 통해 초현실주의의 다양한 개념을 투영시켰다. 그의 인형시리즈 중에는 성과 죽음의 이미지가 투영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들이 많다. 그는 성적 장면을 연출하여 도착-페티시즘-의 힘을 보여주면서 주체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형의 신체를 페티시화하고 사디즘과 마조히즘적 충동을 동시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당시 사회와 전통예술이 강제하던 아름답고 순수하며 단일한 신체라는 정체성에의 도전이었다.

벨머는 자유롭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정신 속에 내재한 편집적이고 성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일생동안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의 신체에 가한 그의 잔혹함의 미학은 폭력을 위한 폭력이 아닌 인간의 존재와 삶 자체에 대한 실존적 질문이었다. 벨머는 인형작업을 통해 극단적인 대립물, 즉 성적 욕망과 비극적 상황, 사람과 인형, 가학과 피학, 드러내기와 훔쳐보기, 생과 사의 이중적 굴레를 끈질기게 결집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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