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
창과 방패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21.02.0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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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모순(矛盾)이란 말이 있다. 중국 초나라 때, 한 상인이 어떤 창이라도 막아내는 방패와 어떤 방패라도 뚫어버리는 창을 동시에 팔았던 데서 유래된 말이다. 구경꾼이 `그 예리하기 짝이 없는 창으로 그 견고하기 짝이 없는 방패를 찌르면 도대체 어찌 되는 거요?'라고 묻자 당황한 상인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둘러 달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창(矛)과 방패(盾), 즉 모순이라고 한다.

얼마 전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읽었다. 작가 노트에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 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려면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라고 쓰여있었다. 대학 시절 불렀던 노래 중에 사랑하기에 떠나간다는 너무나도 모순적인 가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말이 가슴 절절하게 이해됐던 건 어쩌면 그때부터 벌써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의 상반된 삶을 지켜보며 인생의 모순을 절감했던 주인공조차 사랑하는 사람 따로 결혼할 사람 따로 모순적 선택을 하게 되는 책의 결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가슴에 가득 찬 슬픔을 글로 풀어냈을 때 오히려 그 글로 위로받았던 모순적 경험이 내게도 있다. 사람마다 삶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선택과 경험을 겪게 되는 것 같다.

일전에 우리 집에 작은 사건이 있었다. 나이를 앞세워 자꾸 설명하려는 고리타분한 늙은이와 다 아는 얘기는 두 번 듣기 싫어하는 시건방진 젊은이, 두 남자가 충돌한 것이다. 다행히 폭발 직전에 나이 든 남자가 현장을 떠남으로써 불길은 잡혔지만, 그 자리엔 강력한 시베리아 한파가 둥지를 틀었다. 늘 그렇듯 불뚝하는 성질까지 꼭 닮은 부자 사이에서 안절부절 눈치 보며 중재하는 역할이 내 몫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건의 경위와 평소 그 둘이 서로에게 얼마나 우호적이었는지, 취미도 같아서 씨름 얘기할 때면 주거니 받거니 얼마나 죽이 맞았었는지를 이 천자 분량의 글로 써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묵묵부답.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침묵의 이틀이 지나갔다. 그동안 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쨌든 둘 다 속으로는 못 이기는 척 화해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내가 화해를 주선하지는 않으리라. 결자해지란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남편이 먼저 아들을 불러 앉혔다. 그리고 그렇게 멋쩍게 훈계하는 것이 아빠 식의 사과라는 걸 아들은 이해했다. 사건은 일단락됐고, 나는 이것이 배려를 선택한 두 남자의 현명한 해석이었다고 생각한다.

새해, 어떤 이는 올해가 정말로 힘든 `위기의 해'일 거라 하고 또 누군가는 그렇기에 `기회의 해'라고도 말한다. 이제 주어진 일 년의 시간을 창으로 예리하게 벼릴지, 단단하게 두드려 방패 삼을지는 오직 내 삶의 해석으로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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