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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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6.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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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놓아야 할까, 잠가놓아야 할까
이 창 섭<아산소방서장>

안전한 상태란 인간이 위험요인으로부터 격리된 상태인데, 그 위험요인으로는 재해, 범죄 등이 있다. 재해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안전을 safety라고 하고,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의 안전은 security라고 한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주거공간에서 safety는 화재예방, security는 방범에 초점이 맞춰진다. 우리는 이 둘이 가지는 흥미로운 상충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피난하기 위해서는 출입문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도둑이나 강도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문이 철저하게 잠겨 있어야 한다. 화재나 범죄 중 어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서 나머지 하나는 유보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될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주거공간에서 범죄와 화재에 의한 피해자의 비율은 5대1정도다. 따라서 사람들이 평소에 화재보다는 범죄에 더 많은 경각심을 가지고 방범에 초점을 맞춰서 주거 및 사업 공간을 단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고로써 발생하는 피해의 규모는 인명이나 재산피해 모두 화재로 인한 것이 범죄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보다 훨씬 크다.

충청남도에서 발생한 사고의 예를 살펴보면, 1993년 4월 19일 논산 서울신경정신과의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34명이 사망했으며, 지난해 10월 20일 공주 원희정신과의원 화재로 5명이 사망했다. 위의 사고들은 수용자의 탈출을 막기 위한 장치가 피난을 방해, 대형인명피해를 낳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잠가놓아서 피해가 커진 사례들이다.

화재 등의 돌발적인 위험에 노출된 인간은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을 할 수 없는 패닉에 빠지므로 피난통로가 지극히 단순하지 않으면 피난에 실패할 위험성이 커진다.

외부침입자를 막기 위해 잠겨 진 상태로 유지되는 비상구와 창고 용도로 쓰이고 있는 비상통로 및 계단은 비상탈출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로 작용한다.

안전하지 못한 방범·잠금장치는 화재가 발생하면 거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되는데, 창틀에 덧대어 설치된 창살이 대표적인 예이며, 자물쇠로 잠긴 상태로 유지되는 출입문은 자물쇠를 여는데 소요되는 시간으로 탈출을 심각하게 지연시키거나 패닉상태의 피난자가 자물쇠를 개방하는데 실패해 희생당하게 한다. 특히 밖에서 잠긴 출입문은 거주자가 외부의 도움 없이 피난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원활한 피난을 위해서 출입문은 탈출을 방해하는 어떤 장치도 있어서는 안 되며, 잠금 장치는 어둠 속에서도 쉽게 해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전기에 의해서 개방되는 문은 정전에 대비해야 하는데, 교도소 등의 감호시설에선 이의 준수가 꼭 필요할 것이다. 화재나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모두 중요하다. 도둑은 언제든지 들 수 있어 경각심을 가지지만, 화재는 남에게만 발생하는 불행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도둑으로부터 잃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화재로부터 잃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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