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천리(牛步千里)
우보천리(牛步千里)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1.02.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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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신축년 해맞이는 집에서 마주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안방에서는 떠오르는 해를 날마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침잠이 많아서 그러지 못했다. 운 좋게도 새해 첫날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 새해 첫 기운을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어스름 등성이에 떠오른 해를 응시했다. 지난해 절망을 털어내고 다시 한번 희망을 꿈꾸는 눈빛을 보낸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수업 일수도 줄어 백수 아닌 백수처럼 온종일 혼자 있다 보니 남편바라기가 됐다. 전에는 일도 바빴고, 사회활동이 많아서 밖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중심인 삶이었다. 무료해진 일상이 견디기 힘들고 우울해지면서 퇴근하는 남편만 기다리게 됐다. 사소한 일에도 잔소리를 하면서 다툼도 잦았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으로도 부부싸움이 도를 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묵묵한 남편 덕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다섯 명 이상 집합금지로 두문불출했다. SNS를 통해 십여년 전 방영된<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서라벌 내 5인 이상 집합 금지를 선포하는 장면이 여기저기 옮겨지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나 허구적인 드라마의 한 부분으로라도 지금의 시국을 이겨내 보려는 움직임으로 여겨졌다. 전국적으로 코로나19의 위험 속에서도 대면 업무를 수행하시는 보건의료, 복지, 환경미화, 운송 배달업 종사자 등 필수노동자를 응원하는 릴레이에 참여하면서 힘을 보태기도 했다. 대중매체에서 전파되는 공익적인 영상으로 위안을 삼기도 하면서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

1월 초 화상으로 진행된 대통령 신년인사회에서 `우보천리하듯 꾸준하게 소중한 일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메시지는 인상적이었다. 한국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은 전 세계가 주목했다. 대중문화가 한류를 일으켰듯 K-방역은 코로나19 범유행 사태에 대한 대처를 잘 해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위기 앞에 강했다. IMF시기를 `금 모으기 운동'으로 함께 극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소띠 해, `하얀 소의 해'이다. 그래서인지 소와 관련된 사자성어가 유독 많이 회자된다. 그중에서 우생마사(牛生馬死)와 호시우보(虎視牛步)를 마음에 새겼다.

우보천리하듯 우직한 소처럼 느릿느릿 걸어가지만 예리하고 지혜롭게 관철하는 호시우보의 자세로 세상의 순리를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흔들림이 많았던 지난해를 돌아보니 그래도 잘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무기력증에서 탈피해 조금씩 일상을 회복한 것도 그렇고, 관심 분야를 공부하며 재충전의 기회로 만든 것도 잘한 일이다.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하며 힘을 주고 있다. 마법의 시간처럼 새해도 한 달이 지나간다. 매일 따뜻한 저녁 밥상을 차리며 부부의 연을 이어가는 순간도 기다려진다.

서두르지 말자.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워낭소리처럼 `우보천리'가 경종을 울리며 삶의 지표를 세울 것이다. 거스름 없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느릿느릿 마음을 옮겨 본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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