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매화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2.0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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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살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게 성급함이다.

성급함은 평정심을 잃게 하여 결과적으로 일을 그르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급함도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피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지혜이다.

한겨울에 봄을 기다릴 때, 사람들은 성급함을 피할 수 없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광려(李匡呂)도 봄을 기다릴 때 성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滿戶影交脩竹枝(만호영교수죽지)
집 가득 매화 그림자가 대나무에 걸쳤고

夜分南閣月生時(야분남각월생시)
밤 깊어 남쪽 누각에 달이 나올 때면

此身定與香全化(차신정여향전화)
이 몸은 분명 향기와 하나가 되어

嗅逼梅花寂不知(후핍매화적부지)
매화에 다가가 향기 맡아도 고요한 채 알지 못하네

한겨울에 성급하게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제일 반가운 것은 단연 매화꽃일 것이다.

매화는 결코 봄꽃이 아니지만,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로서는 봄꽃도 이런 봄꽃이 없다.

매화는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강인함이 매력인데, 사람들은 그 꽃만 보고 봄을 떠올리곤 한다.

시인의 집에도 한겨울에 매화꽃이 피었다.

그 그림자가 대나무와 교차하기도 하고 밤이 되면 남쪽 누각에 달빛에 의한 매화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한다.

봄을 기다리던 시인에게 매화는 퍽이나 반갑고 귀한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화꽃 아래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성인 것이다.

그리고 온몸에 매화 향이 배서, 매화나무에 다가가더라도 매화나무가 모를 정도였다.

향기를 매개로 한 물아일체가 아닐 수 없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봄을 바라는 것은 분명히 성급한 일이다. 그 성급함을 야기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매화꽃이다. 겨울의 향을 발하면서 봄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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