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마주하는 법
바람을 마주하는 법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1.02.0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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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바람은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골짜기 끝자락인 쉬어가(家)가 놀이터라도 되는 양 윙윙거리며 텃밭과 마당을 휘젓다 사라진다. 아직은 편백나무 여린 가지들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혹시나 거센 바람에 가지들이 꺾이고 나무들이 다칠까 조바심이 난다. 맞은편 언덕에 벚나무와 전나무를 바라보니 세찬 바람에도 우뚝 버티고 서서 바람에 오롯이 몸을 내어 맡긴 채 길을 내어주고 있다. 오랜 세월 이곳 바람 골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낸 의연함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오는 듯 눈두덩이 뜨겁다. 우스갯소리처럼 이곳 바람에 홀려 땅을 사게 되었노라고 떠들던 내 모습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나는 나름대로 바람 예찬론자였다. 계절마다 다르고 날마다 다르고 시시때때로 다른 바람의 숨결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바람이 불어 올 때면 눈을 감고 가만히 서서 바람에 얼굴을 맡기고 바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런 내가 이곳 쉬어가 에서 처음 마주하는 겨울바람은 너무 거칠고 매서워 온몸이 움츠러들며 두려워졌다. 그저 속수무책 방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쉬어가를 윙윙거리며 휘몰아치다 나무들을 할퀴고 지나가는 바람을 바라볼 뿐 감히 그 세찬 바람 앞에 맨얼굴을 내밀고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동네는 눈이 한번 쌓이면 겨우내 눈이 안 녹어. 바람도 골바람이라 소리부터 다르고 엄청나잖여” 하시던 안쪽 동네 할머니 말씀이 이제야 수긍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항상 나뭇가지를 쉼터 삼아 놀던 까치와 박새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나비도 나타나질 않는다. 우리가 이곳에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어슬렁거리고 나타나 우리 주변을 맴돌던 녀석인데 오늘은 보이지를 않는다. 바람이 너무 거세 어디 안전한 곳에 피신을 했나 보다. 녀석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어렴풋 기억나는 시인 이정하님의 `바람 속을 걷는 법 2'를 읊조려 본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그래, 산다는 것은 / 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 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은 높이 나는지./

마치 거센 바람을 두려워하며 겁먹고 있는 나에게 들려주는 맞춤형 시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터진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라는 시인의 말처럼 세상을 살아 내다보면 온갖 종류의 바람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살랑살랑 따사롭고 부드러운 바람만 불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때론 거세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마주하기 두려워 피하고 싶을 때가 부지기수이지 않던가.

만약 창밖의 나무들이 거센 바람을 마주하고 바람에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나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나무가 바람을 마주하며 살아내는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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