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축(立春祝)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
입춘축(立春祝)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
  • 이승훈 충북도 문화재팀 학예연구사
  • 승인 2021.02.01 1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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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승훈 충북도 문화재팀 학예연구사
이승훈 충북도 문화재팀 학예연구사

 

봄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추운 날씨지만 절기상 봄의 시작인 입춘(立春)이다.

“입춘 추위에 장독 깨진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마지막 추위가 남았을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곧 봄이 올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감을 꺾을 수는 없을 듯하다.

입춘은 24절기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선조들은 입춘을 맞아 한 해가 평안하고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풍흉을 미리 점을 쳐 보기도 하였다.

특히 입춘에는 입춘축(立春祝)이라고 하여 좋은 글귀 등을 적어 대문이나 기둥, 부엌이나 곳간 등의 문짝에 붙였다.

입춘축을 써서 붙이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입춘날에는 의춘(宜春)이라는 두 글자를 써서 문에다 붙인다고 하였으니 입춘첩을 붙이는 것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새해에 문신들이 지은 신년 축시인 연상시(延祥詩) 중 잘된 것을 뽑아 대궐의 난간에 붙였는데, 이것을 춘첩자(春帖子) 또는 입춘첩(立春帖)이라 하였다.

사대부가에서는 궁중의 춘첩자와 같이 새로운 시를 써서 새로운 해를 축하하거나 옛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서 입춘축으로 사용하였다.

간혹 명필가를 찾아 글을 받아 입춘축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충북의 유학자들도 입춘을 맞아 시를 짓기도 하였다.

진천 출신의 유학자 강백년(姜栢年)은 입춘이란 시를 직접 짓기도 하였다.

`작은 성 외로운 객관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 먼 길을 떠난 나그네 봄이와도 돌아가질 못하네 / 50년 동안 살아온 그 많은 일들 / 새벽 종소리 듣고 비로소 잘못된 줄 알았네.'라고 하여 입춘에 타향에 머물고 있는 쓸쓸한 감정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입춘날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을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입춘축을 벽사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또한 한 해 농사가 잘되길 빌거나, 미리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맥근점(麥根占)이라고 하여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 뿌리를 캐어 풍흉을 점친다.'고 하였다. 보리 뿌리를 보고 풍흉을 점치는 것은 최근까지도 남아있는 풍습 가운데 하나이다.

진천 출신 유학자 이하곤(李夏坤)은 입춘날 농가의 보리뿌리점 풍습을 시로 남겨 풍년을 기대하는 농부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기록하기도 하였다.

`입춘의 보리가 세뿌리를 내렸는데 / 내년의 풍년을 이로써 점친다네 / 그 말 듣고 늙은 농부 기쁜 기색 가득하여 / 낫을 갈아 누런 구름 베어내는 흉내 내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 입춘은 한해의 시작점으로 집안의 안녕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한 기점이었다.

2021년 새해에 굳게 다짐했던 계획들이 조금은 어긋나거나 마음이 해이해졌다면, 입춘을 맞아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긋났던 다짐들을 다시 되살펴 보는 것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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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한 2021-02-02 12:50:22
입돌아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