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시대'가 왔다고?
`판사의 시대'가 왔다고?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1.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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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법무부 장관 자리는 대체로 검사 출신의 몫이었다. 비검찰 출신도 있었지만 판사 출신은 드물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6명은 모두 검사 출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공언하면서도 재임 중에 2명의 검찰 출신 법무장관을 기용했다. 그가 발탁한 비검찰 출신인 강금실·천정배 장관도 태생이 판사는 아니었다.

추미애 장관에 이어 역시 판사 출신인 박범계 법무장관이 취임했다.

택시기사 폭행 시비로 진땀을 빼고있는 이용구 차관도 판사 출신이다. 법무장관을 판사 출신이 잇달아 맡은 것도, 장·차관을 모두 판사 출신이 맡은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판사 출신 법무차관은 무려 60년 만에 나왔다.

검찰을 압도하는 권력을 갖게 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처장과 차장도 모두 판사 출신이 맡았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수사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 그를 보필할 차장에는 수사경험이 풍부한 검사 출신이 등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지만 빗나갔다.

법무부에 이어 대통령도 견제하기 어렵다는 이 무소불위 조직의 1인자와 2인자가 모두 판사 출신으로 채워지며 검사의 시대는 가고 판사의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법원 밖은 판사의 시대를 맞았는 지 모르겠지만 법원 내부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지금 법원은 판사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두고 있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은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탄핵 법관 1호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의심하는 기사를 썼다가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일본 기자의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그는 탄핵된다.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의석을 감안하면 법원이 치욕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검사의 영역이던 법무부 장관 최장수 기록을 판사 출신이 세웠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기록의 소유자는 민복기 전 대법원장이다. 그는 1963년 4월부터 1966년 9월까지 3년 5개월 동안 법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대법원장 최장수 기록도 갖고있다. 무려 10년 2개월 동안 사법부 수장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이 기록들이 명예로운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검찰총장까지 섭렵했던 그의 화려한 이력은 모두 군사독재 시절에 이뤄졌다. 그는 한국 사법부 최악의 오점으로 꼽히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완결한 장본인으로 꼽힌다. 공안기관이 가혹한 고문으로 간첩 혐의를 조작해 무고한 시민 8명을 사형시킨 이 사건은 국제사회도 `사법 살인'으로 꼽고 있다.

허위와 날조로 일관된 이 사건 희생자들의 사형을 최종 확정한 당시 대법원의 수장이 그였다.

“우리가 유신헌법을 받들고 총화 체제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데 본뜻이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가 대법원장 재임 중에 직원들에게 했다는 연설 한 토막이다. 그가 오랫동안 군사정권의 총애를 독차지한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홀로 판사 전성시대를 누리는 동안 법원은 군사정권 수호에 종사하는 오욕의 시대를 보냈다. 그는 은퇴 후에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 군 출신이라 사법부를 군의 법무감실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사법부의 독립을 내세우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만 제사에 대추 밤 놓듯이 구색을 맞춘 정도였다”. 낯두꺼운 변명이자 자백이었다.

주요 판결마다 도전을 받고 법관 탄핵까지 목전에 둔 위기의 법원을 두고 판사의 시대가 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몇몇 판사들이 정권의 부름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세간에서 판사의 시대가 운위되는 것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너무도 엄중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 선배 처럼 `제삿상의 구색이나 맞추는 대추나 밤'으로 전락할 때 판사의 시대는 바로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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