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게 놀아보자
신명나게 놀아보자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1.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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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나에게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결심만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는 바다 앞에 선 소녀의 이야기다. `파도야 놀자!' 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 안에 울렁임이 있었다. 바다 앞에 선 소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칼 융은 중년기를 `인생의 정오'로 비유하면서 성숙을 위한 변화를 시작하는 시기라고 했다. 내 중년기의 시작은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상담학과 미학은 관심 있고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는데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소녀가 바다에 놀러 간 것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나는 소녀가 바다를 선택한 것처럼 상담학을 선택했고 소녀처럼 여러 심리적 혼란을 경험했다. 소녀가 바다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기도 하고 파도에 호령을 하기도 하고 물러간 파도를 따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통해 나를 통찰한다. 상담자 수련을 하는 동안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나를 직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소녀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뛰어들어 놀기를 겁내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용기를 내야 했지만 두려움은 그것을 넘어선다. 그 마음에는 고이 접어 숨긴 나의 부족하고 약한 모습이 있었고, 미성숙한 모습을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질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피하게 된다. 수용한 나와 수용할 수 없는 나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내적, 외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내면에 분리된 나의 경험들도 통합되어야 한다.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세계를 선물할 것이다.

`파도야 놀자'에는 그 순간이 그림으로 표현된다. 어느새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소녀의 표정은 경이롭다. 좌우로 나누어져 있던 지면의 색이 하나가 된다. 자신감 넘치는 소녀의 발길질과 파도 또한 하나가 된다. 점점 강렬해지는 소녀의 발장구 그리고 지면을 꽉 채운 파도. 순간 소녀의 하얀 치마는 파랗게 물들어 있다. 하얀 여백으로 있던 하늘도 바다도 파란색이 된다. 이제 소녀는 진정으로 바다와 함께 한다. 그리고 소녀를 따르던 갈매기들도 소녀와 같이 행복한 모습이다. 바다와 하나가 된 소녀가 해변에 앉아 갈매기들과 바다의 모든 것을 즐기는 장면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독서치료를 전공한 후에는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책을 만나면 반갑고 귀하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만한 바닷가에서의 일상이 깊은 통찰로 안내한다. 우리는 생애 발달단계에서는 친구, 학업, 결혼, 직업 등 저마다 직면해야 할 과업들이 있다. 새로운 친구인 파도를 대하는 소녀처럼 과업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파도야 놀자'에는 소녀와 바다 외에 등장인물들이 있다. 갈매기와 엄마이다. 갈매기들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소녀와 함께한다. 바다이니 갈매기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소녀 주위를 돌며 소녀가 심리 변화를 느낄 때마다 그들도 함께한다. 갈매기는 소녀가 성장하는 동안 함께한 그의 경험일 것이다. 두려움과 맞서 용기 냈던 경험은 고스란히 소녀에게 남아있다. 그리고 소녀를 지켜보는 엄마, 소녀는 외적, 내적으로 혼자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을 때가 있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소녀가 바다에서 긴장과 완전한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처럼 그리고 충족된 행복감을 맛보는 것처럼 나에게 나와 신명 나게 놀 기회를 주자. 나를 믿고 나의 선택을 존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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