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과 후불의 차이
선불과 후불의 차이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1.2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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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중국에 사는 딸이 보고 싶어 혼자 더듬더듬 북경으로 날아간 적이 있었다. 영하 17도를 넘나드는 추운 겨울이었다. 처음 간 중국이라 이곳저곳 구경하느라 며칠을 여념이 보내다가 딸네 집에 돌아온 날 밤이었다, 분명히 잠들 때는 훈훈했었는데 한밤중 한기 때문에 깨어보니 난방이 멈추어져 있어 온 집안은 삼척냉방이 되어 있었다. 몹시 추웠다. 딸아이는 가스 충전을 미처 하지 못한 미안함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오돌오돌 떨었던 긴 밤이었다. 우리처럼 난방온도를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장치가 그곳엔 없었다. 중앙난방이라고 하는데 겨우 20도 정도의 온풍이 순환되어 평소에도 미적지근한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마저 끊겨버린 실내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사태까지 온 걸까? 중국의 공과금 지불 방법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전기든 가스든 사용 후 대금을 고지서에 의해 지불하지만 그들은 먼저 구입한 뒤 사용하는 체계란다. 그러니까 우리는 후불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그들은 선불제인 것이다.

선불제란 말 그대로 외상이 없다는 것이다. 돈 없으면 쓰지 말라는 단순 지론에 입각해서 돈 액수만큼만 충전해주는 간단명료한 시스템이다. 예약된 양을 다 써버린 경우 얄짤 없이 단절되고 만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단절되는 상태, 우리나라에서라면 불같이 화내는 사람들 많고 많을 텐데, 그들은 처음부터 습관으로 길들여져 잘도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집을 사는데도 융자금이 필수요, 홈 쇼핑에서까지 할부가 대세이고 백화점 쇼핑이나 전철을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까지 카드 결제다. 이러다 보니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어찌 보면 빚으로 사는 후불제 사회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 미리 구입해서 쓰는 낯선 제도가 이상하다.

선불제, 얼마나 당당하고 빈틈없는 제도인가. 우리나라처럼 미리 쓰고 난 후 고지서에 의해 납부하는 후불제에는 검침 요원이며 검사 요원도 있어야 하고 혹여 독촉장도 발부하고 법적 수순도 밟아야 하는 등, 관리에 많은 요원이 필요하기도 한 복잡한 사무인데 반해 선불제는 무엇보다 일 처리가 단순하고 깔끔하며 경비 절약 면에서도 월등하다.

그런데도 선불제도에 대해 호감이 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선불제는 어디까지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선 제도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가져야 할 아량이나 배려가 한 치도 안 보이는 냉정한 제도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민주국가들이 선호하는 제도인가 보다.

돈이 없으면 쓰지 말라는 단순 구도의 원리. 포근하고 따스한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선불제의 단 한 가지 단점일 것이다.

흑묘든 백묘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그곳 어른의 말이 떠오른다. 15억이라는 인구, 지금은 3자녀 정책으로 바뀌었다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자녀 정책을 고집했던 나라여서 늘어나는 인구가 두통거리인 나라, 호적에 등재되지 않은 사람이 많고 많아서 실제 정확한 인구수를 알 수 없다는 거대한 공룡 같은 중국, 그럼으로써 국민을 필요에 의한 도구로 내모는 저의가 읽힌다.

상위 10%를 위한 국가라는 말도 이어서 떠오른다. 상위 10%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돌아가는 사회, 여전히 빈부 차이는 극심할 수밖에 없으며 인권의 귀하고 소중함이 도외시 되는 정책 중의 하나가 선불제임도 알게 된다. <귀해야 귀한 대접을 받지>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체념하며 자책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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