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 손오현
음악인 손오현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01.27 1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노래는 힘들고 고단한 삶에 즐거움을 준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 가슴에 살아 움직이는 한국가요는 음악인들의 혼을 느낄 수 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대중가요로 1921년 레코드 음반이 발표된 `희망가'로 알려졌다. 이후 1925년 발표된 `사의 찬미'가 크게 유행된 이래 가요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100여 년의 긴 세월동안 한국가요가 사람들의 정서생활에 영향을 미치면서 오늘날 우뚝 서게 된 데에는 작사가, 작곡가, 가수들의 뼈를 깎는 고통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가 부른 노래는 레코딩을 중심으로 녹음된 음원을 저장해 복제본을 만들고, 이를 세상에 내놓는 과정을 제도적으로 실천해 생산, 매개, 소비라는 현대 대량문화로 발전해왔다. 특히 편곡 및 연주, 노래한 음악을 음악의 3요소인 리듬, 멜로디, 소리의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를 오랜 세월동안 해온 사람이 손오현이다. 6·25 전쟁이 끝난 이듬해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했다. 젊은 혈기로 택시운전과 가요 음반 테이프 유통에 낮과 밤을 바쁘게 살았지만,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을 싣고 운전하던 택시 안에서 당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가수 김추자의 노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빗속의 여인', `왜 아니 올까?'등을 반복해 들으면서 독창적 창법의 비음이 섞인 음악에 귀가 번쩍 뜨여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몇 날 며칠 그의 머리에 대중가요 제작에 대한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섰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손에 쥔 돈이라곤 몇 푼 되지 않는 생활비밖에 없던 그는 음악제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렵사리 마련한 비용으로 음반제작장비를 설치하고 맘모스음악사를 열었다.

음악사에 녹음시스템을 갖춘 그는 가요계 인사들은 물론 그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을 찾아 만나고 배우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쌓아갔다. 기존 인기가수들의 노래 취입은 쉽지 않았다. 그는 추억의 노래로 스트레스도 풀고 마음을 즐겁게 해줄 메들리 음반으로 만들기로 하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두둥실 흐르는듯한 스타일의 가수 백승태 옛노래 메들리 음반을 제작했다. 이 음반은 무려 100만 장이 전국에 팔려나갔다. 백승태를 일약 메들리스타덤에 올려놓은 그는 우리나라 재래시장 가수로 알려진 신바람 이박사의 가요메들리로 또다시 음반 100만 장 판매고를 올려 기염을 토했다.

가요계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자 많은 가수의 음반 녹음제작이 늘었고, 270여 가수들의 음반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가 제작한 가수 오은주의 `돌팔매'가 들어 있는 음반, 이동기의 `논개' 가 실린 레코드들이 세상에 퍼져 나가고,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상당수의 가수가 자신의 노래 세계를 구축했다. 작사, 작곡가 김수환, 김동찬, 조은파, 정경천, 신상호 등과도 음악인생의 소중한 인연으로 만나 늘 교류하고 있는 그는 대중가요와 함께 살아온 지 어언 4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거칠고 험난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에 대중가요가 일정부분 국민의 행복한 정서생활에 끼친 영향을 고려할 때,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의미 있는 일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