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7.06.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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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전 언론인>

늘 아침나절 집주변에 제초작업을 했습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예초기 날에 하얀꽃이 핀 채 무더기로 잘려 나가는 개망초를 보고 6·25가 생각났습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 참전하신 아버님이 이맘때가 되면 "전쟁나던해 개망초가 어느해 보다도 많이 피었다"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지난해 가을 작고하셨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지갑에 꼭꼭 챙기신 참전용사증을 보고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잡초인 개망초가 아버님을 보고 싶고, 그립게 합니다.

핑도는 눈물에 시야가 흐려 일손을 놓았습니다. "당신께서 생사가 절박한 전장에서 보셨던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었습니다. 아버지 어디선가 보고 계신가요."

저만치 집아래 길에 '고씨 아저씨'가 스쿠터를 타고 가십니다. 이분은 방아다리에서 6·25전쟁에 참전하신분들중 생존해 계신 마지막 참전용사이십니다. 동네에서 고씨아저씨로 불리는 이분의 성함은 고종근씨,올해 78세 이십니다.

8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이곳 방아다리에서 50년을 넘게 사시는 분입니다. 평소 전쟁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스므살때 친척집에 초상이나 부고 돌리다 끌려가다시피 참전을 했다"고 말문을 여십니다. "내 키가 워낙에 작아 엠원소총을! 질질 끌고 다니다시피하며 싸웠다"고 시작되는 생사를 넘나드는 무용담이 "많이들 죽었어다시는 전쟁나지 말아야햐…"로 끝을 맺습니다.

이달, 6월은 보훈의 달입니다.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기려 보자고 정한 달입니다.

현충일은 지났고, 6월 25일이 돌아 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생때 같은 자식과 사랑하는 남편을 전장에서 잃고 깊게 팬 주름살에 한을 묻은 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노부모와 미망인들이 우리 이웃에 살고 있습니다. 누렇게 빛바랜 흑백사진 한장을 깊숙히 간직한 채 사무친 그리움에 눈물을 찍어내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분들입니다. 내 피붙이가, 젊은 남편이 전사통지서 한장과 한줌의 재로 돌아온 현실에 망연자실한 몸부림을 쳤던 이분들에게 함께 사는 정을 나누어야 됩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산야에서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피눈물로 절규하다 숨져간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에 머리숙여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땅에 살아 남은 우리가 해야할 제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이달은 말 그대로 보훈하는 달입니다.

방아다리 고씨 아저씨를 비롯한 참전 용사님들 "고맙고 감사 합니다.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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