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30년, 가치와 재발견
지방자치 30년, 가치와 재발견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1.2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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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나의 지방자치는 `원산폭격'으로 시작되었다.

`원산폭격'은 옛날 군대이거나, 간혹 학교 또는 단체에서도 자행되었던 가학행위의 한 종류이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허리를 들어 올리고 양손의 뒷짐을 지는 `원산폭격'은 당하는 사람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한마디로 고문과 다름없는 폭력이다.

30년 전 나는 파릇파릇한 신출내기 기자였다. 지방자치의 부활이 각별했던 지방신문의 특성에 따라 특집기사가 기획되었고, 그때 역시 취재기자 인원의 절대부족 상황은 피할 수 없었다. 새롭게 시작되는 지방자치에 대한 소식을 다뤄야 하는 정치부 기자는 고작 1.5명에 불과했다. 베테랑을 자신하는 고참기자 1명에 편집을 겸직하는 젊은 기자가 전부였으니, 1.5명인 것이다. 반면 막 창간한 상대 신문은 무려 5명의 기자를 정치부에 배치해 우리 신문의 전통을 무너뜨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1.5명 중 온전한 1명의 고참기자는 공·사석을 막론하고 5:1의 싸움에 100대 빵의 승부를 자신했고, 실제로 그만큼의 역량과 기량을 과시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뛰어난 한 명이 거두고 있는 100대 빵의 승부가 불안했고, 급기야 “지금의 게임은 단 한 사람만 빠져도 5:0으로 불리해지는 것”이라고 겁 없는 제안을 했다. 결과는? 그때는 지극히 당연히 여겼던 술집 바닥에 `원산폭격'.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고문과 다름없는 가학적 폭력에 시달리며 땀을 쏟고 온 몸이 후들거렸던 기억은 `지방자치'에 대한 불운이고 불행이다.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원산폭격'의 고통이 되살아난다. 강산마저 세 번은 바뀌었을 30년이 지나는 동안 세상은 참 많이도 변했다. 우선 `원산폭격'같은 폭력은 당연히 사회악이 되었고, 지금 시대에는 군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부에서조차 그런 가학행위를 명령하거나 순종하는 사람은 없다. 지방자치는 눈부시게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당장의 코로나19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방이 도맡아 하고 있으니, 지방자치 부활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긍정적이다. 선별진료소의 설치와 운영, 격리대상자에 대한 관리와 돌봄, 갖가지 행정명령에 대한 지도와 단속, 그리고 지원에 이르기까지 `지방'과 `지방자치'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사회안전망의 튼튼한 구성과 자발적인 희생과 봉사, 그리고 지원을 위한 시민의 땀과 눈물 역시 오로지 지방이므로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선제적 지원은 물론 시민의 협력과 연대의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지방'의 재발견과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로 군사독재의 억압에서 벗어난 지 30년이 되는 `지방자치'는 아직 시민과 민주주의의 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원산폭격'같은 비인간적 폭력이 사라진 것은 인권과 평화의 상호보장이라는 정서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었기보다는 그것이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처벌과 비난을 면하기 위한 `타자성'이 더 농후하다.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에 대한 비난을 우회하면서 익명의 댓글을 통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언어폭력, 그리고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난무하는 투서와 근거 없는 험담과 비방은 `지방'에 숨어있는 폭력의 새로운 양상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것처럼 보이는 지방의 새로운 권력집단을 만들고 있다는 우려와, 오로지 중앙정치에 의해 재단되는 새로운 지방 일꾼의 발굴과 육성의 과정 역시 한 세대가 지나도록 전혀 지방다움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한계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된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은 희미해졌고, `지방자치'의 절대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시민이 여전히 많다. 세상의 가난하고 낮은 사람, 그리고 아프고 외로우며 곧 망할 것 같은 사람을 보듬는 `지방자치'의 섬세함. “큰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물고기 조리하듯 하라.(治大國 若烹小鮮)”는 <도덕경>의 말은 지방자치에 더 적합하다. 시민의 연대와 협력으로 지방의 가치와 재발견이 자랑스러운 새해, 지방이 `밥 먹여 주는'시대가 `지금 여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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