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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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7.06.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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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007, 그리고 머독
정규호<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나폴레옹은 변신의 귀재가 되어 있었다.

식인귀에서 호랑이로, 그리고 괴물을 거쳐 황제에 이르기까지, 마치 만화영화의 주인공 같은 그의 화려한 변신은 언론에 의해 만들어졌다.

1815년 3월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기까지의 20일간의 행적을 기록한 당시 프랑스의 일간지 '르 모니뙤르 유니베르셀'지의 변화무쌍한 헤드라인은 이후 언론에 대한 대표적인 특징으로 대변된다.

언론의 기회주의적 속성 혹은 권력에 대한 굴종의 시금석으로 여겨지는 이 일화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정작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 위력을 절감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언론은 권력에 아부하고, 권력은 또 언론의 눈치를 봐야하는 대립구도는 어쩌면 지금의 상황보다 고무적이다.

영화 007시리즈 가운데 '007네버다이(원제:Tomorrow Never Dies)'는 비록 상상에 의해 꾸며낸 이야기지만 작금의 언론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피어스 브로스난이 제임스 본드로 분하고 중국배우 웨이 린(양자경)이 본드 걸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인공위성과 통신망, 그리고 신문과 TV를 교묘히 이용하여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킴으로써 세계를 정복하려는 막강 언론재벌의 야망을 묘사하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의 사실상 붕괴에 따른 냉전시대 갈등의 핵심이 언론 권력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듯해 눈길을 끈다.

인공위성을 조작해 영국과 중국을 초긴장상태로 몰아가는 장면에서는 첨단 과학과 정보통신의 장악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예고한다.

가장 먼저 특종을 잡아 자신의 언론매체에 대한 신뢰성을 고무시키면서 세계 정복의 야욕을 숨겨두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대중을 현혹해 언론권력의 무한한 욕망을 펼치는 것을 가정한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이러한 기막한 가정은 이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호주출신의 루퍼스 머독회장이 이끄는 세계적 미디어 그룹 '뉴스 코퍼레이션'이 전통의 월 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촉발된 언론권력의 집중화는 대체로 우려와 걱정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루퍼스 머독은 '정보사회를 선도하는 세계 최고의 미디어 사업가'라는 찬사와 함께 '언론 산업의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확장주의자'라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는 인물이다.

'뉴스 코퍼레이션'은 영국의 뉴스 오브 더 월드와 선을 필두로 타임, 뉴욕 포스트 등의 인쇄매체를 비롯해 폭스TV, ESPN, 스타TV 등 신문과 방송, 잡지 및 출판은 물론 위성방송과 심지어 항공 산업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50여개 나라에서 700여개 이상의 사업체를 운영한다.

놀라울 정도의 자본 집중력을 보이고 있는 뉴스 코퍼레이션 그룹에 대한 우려는 황색 저널리즘의 정당성 추구와 영향력 행사의 도구로 언론을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인수 시도에서 드러난 기존 소유권자 뱅크로프트 가문과의 인식차이는 작금의 언론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편집권 독립'과 '신문의 독립성과 성실성'이라는 화두는 재벌형태의 언론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해석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정보 권력의 독점과 자본의 종속성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우리 국민이 여전히 신뢰하는 언론의 본질은 기자를 포함한 그 소속원의 고결한 윤리의식에서 찾아야 한다.

통제나 제어가 쉽지 않은 언론의 특성상 끊임없는 자기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하물며 펜을 칼로 제압하려는 경악스러운 일은 분명 부끄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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